[최신/완벽] 창덕궁 답사기 (창덕궁 분석 및 조사, 구조 및 특징, 가치와 평가, 감상문)
- 최초 등록일
- 2014.06.15
- 최종 저작일
- 20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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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I. 창덕궁
1. 돈화문
2. 금천교
3. 진선문
4. 인정문
5. 인정전
6. 선정전
7. 희정당
8. 대조전
9. 창덕궁 후원
II. 부용지, 부용정, 주합루, 어수문
본문내용
- 1405년에 태종이 세운 조선 왕조 제2의 왕궁
- 처음에는 법궁(임금이 사는 궁궐)인 경복궁에 이어 별궁으로 창건했지만 이후 임금들이 주로 창덕궁에 거주하면서 실질적인 법궁의 역할을 하였다. 임진왜란 때 한양의 궁궐들이 모두 불탄 후에 경복궁은 그 터가 불길하다는 이유로 재건되지 않고 1610년(광해 2년)에 창덕궁이 재건되었다. 그 후 창덕궁은 경복궁이 재건될 때까지 270여 년 동안 법궁으로 사용되었다.
- 특징:
1) 인위적인 구조를 따르지 않고 주변 지형과 조화를 이루도록 자연스럽게 건축하여 가장 한국적인 궁궐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2) 왕가의 생활에 편리하면서도 친근감을 주는 공간 구성 -> 경희궁이나 경운궁 등 다른 궁궐의 건축에도 영향
3) 조선시대에는 궁의 동쪽에 세워진 창경궁과 경계 없이 사용하였으며, 두 궁궐을 ‘동궐’이라는 별칭으로 불렀다. 또 남쪽에는 왕가의 사당인 종묘가, 북쪽에는 왕실의 정원인 후원이 붙어 있어서 조선 왕조 최대의 공간을 형성했다.
- 과정: 왕조의 상징이었던 궁궐은 일제의 ‘훼손’에 의해 왕궁으로서 존엄성을 잃는데, 1917년 창덕궁 대조전에 화재가 발생해 내전들이 불타자 경복궁의 전각들을 헐어다 옮겨 지은 일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순종이 승하한 후 창덕궁의 훼손은 더욱 심각해졌다. 해방 이후에도 훼손된 상태로 방치되다가 1991년부터 복원사업이 진행되어 1997년 12월에 유네스코(UNESCO)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한국을 대표하는 궁궐이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