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대부흥운동을 읽고 (요약 및 서평)
- 최초 등록일
- 2014.06.17
- 최종 저작일
- 20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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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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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요약
2. 서평
본문내용
1. 요약
1866년 8월 제너럴 셔먼 호를 타고 대동강에 도착한 로버트 토마스 영국선교사. 대동강변에서 저널 셔먼 호는 쇄국정책으로 인해 불타버렸고 그 현장에서 토마스 선교사는 박춘권에 의해 처형당한다. 그때 무릎 꿇고 엎드리어 전했던 성경이 순교의 피를 타고 박춘권에게 전해져 결국 그를 변화시킨다. 그리고, 평양에 오기 전 전해 줬던 3권의 한문성경을 박영식이라는 사람이 입수 집 도배지로 썼고 이 집이 후에 평양에서는 최초의 교회, 널다리골 교회가 되었다. 널다리골 교회는 평양대부흥운동이 일어났던 장대현교회의 전신이다. 한국교회 부흥운동의 시대적 배경은 1894-1910년으로 강대국의 식민지쟁탈 전쟁 하에 한국은 전쟁의 상흔을 경험한다.
<중 략>
또한, 박용규 교수는 평양대부흥운동을 “오직 말씀”에 충실한 부흥운동으로 바라본다. 이는 사경회에 충실했던 당시 부흥회의 특징에서 면면히 살펴볼 수 있다. 한국에 파송된 선교사들은 다 20대였다. 게일은 25세, 언더우드가 27세, 아펜젤러가 26세, 헤론은 28세, 스크랜턴도 29세 등 패기만만하지만 선교경험이 없던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그래서 선교선배의 전략이 필요했는데, 마치 중국에서 선교했던 네비우스의 강의를 듣는다. 그리고 그들은 네비우스 선교정책을 채택한다. 이는 흔히 ‘자립, 자치, 자전’의 원리로 알려졌는데 이보다 더 중요한 원리가 바로 ‘성경공부’이다. 따라서 선교사들은 집회를 사경회 스타일로 개최하였고 이후 지속적인 성경공부가 시작되었다. 결국 이 사경회의 전통안에서 평양대부흥운동은 일어났고, 따라서 다른 부흥운동보다 보다 더 성경적이고 보다 더 건전한 부흥의 역사가 나타났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