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민족운동사] 1930년대 농민운동 - 농민운동의 배경과 성격 및 전개과정, 소작쟁의, 지하투쟁시기의 농민운동과 항일투쟁시기의 농민운동
- 최초 등록일
- 2014.06.19
- 최종 저작일
- 20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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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리말
2. 농민운동의 배경과 성격
3. 농민운동의 전개과정
4. 소작쟁의
5. 지하투쟁시기의 농민운동(1930년~1935년)
6. 항일투쟁시기의 농민운동(1936년~1945년)
7. 맺는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1. 머리말
1930년대 초기의 농민운동을 보면 소작쟁의의 격화, 공생조합(共生組合) 또는 협동조합 운동의 발전, 귀농운동이나 농민야학 등으로 나타난 농촌계몽운동의 확산 등이 주목할 일이 었는데 이때의 농민단체는 1031년 신간회(新幹會)해체가 말하듯이 민족진영과 공산지영으로 분리 되고 있었다. 1920년대와 달리 양성적 농민운동은 민족진영에 의해서 전개되고 공산진영의 농민운동은 지하로 잠적해 갔다. 이 무렵 공산진영의 농민 운동은 비밀단체운동과 적색 소작쟁의가 대종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1930년대라면 일제의 식민통치 양상도 달라진 시기였다. 일제는 1931년 만주 전쟁의 도발로 준전시 체제를 강요하다가 1937년 중일 전쟁 도발을 전기 하여 대체 1935년경부터는 전시체제를 강요했고, 그리고 1940년경부터는 태평양전쟁 도발을 행한 비상전시체제로 치닫고 있었다. 아울러 일제는 한국을 그의 병참기지로 개편하면서 1935년경부터 궁수 공장을 상륙시켜 현지 노동력을 착취하였고, 또 1935년에는 현역장교를 학교에 배치하여 군사훈련을 실시하는 등 전쟁 인구 확보에 급급하기 시작 하였다. 전시 체제의 강요는 1936년 남 차랑(南 次郞)총독이 부임하면서 본격화하였다. 그리하여 한국인의 소위 황국신민화(皇國臣民化)를 위하여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하고 있었다. 1937년 중일 전쟁 도발과 함께 각종 산업통제법(産業統制法)을 발표하고 기왕의 농촌진흥회의 조직위에 국민정신 총동원 조선연맹을 결성하여 식민지 한국사회의 전시체제를 위하여 거미줄 같은 탄압 망을 짜고 있었다. 이것은 중일 전쟁이 남경함락으로 끝날 줄 알았던 일제의 계산과는 달리 장기전으로 전개되는 데에 따른 발악적 궁리의 소산이기도 했다. 전쟁이 확대되고 장기화 할수록 일제는 한국인 착취를 통하여 전쟁을 수행하려고 했다.
2. 농민운동의 배경과 성격
일제하 농민운동은 전체 민족해방운동 중에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농민운동은 농민이 식민지 사회구성원의 80%를 점하고 있었다는 사실과 생존권 확보라는 절박한 식민지 상황에서 분산과 결집과정을 반복하면서 줄기차게 지속된 사실에서도 특징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참고 자료
독립운동사 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10권』
한국독립운동사 연구소, 『한국독립운동사사전』
역사학연구소 지음, 『강좌 한국근현대사』, 풀빛사
대한민국 교육부,『한국민족 족립운동사 9권』, 국사편찬위원회
(표1) 역사문제연구소,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의 역사』, 웅진출판
국사편찬위원회 대한민국 교육부, 『한국민족 독립운동사 9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