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여말선초의 유교사상의 도입과 성격
Ⅱ관학파의 유교사상
Ⅲ도학정치의 대두
Ⅳ참고문헌
본문내용
1. 고려 말~조선 초 사이의 유교사상의 전개와 그 성격
조선 초기의 유교의 학문경향은 위로 고려말기의 유학을 계승하고 아래로부터 조선중기 정주학 전성시대를 연결하는 중간시기가 되는 만큼 학문경향도 두 시대의 중간적인 색채를 보이고 있다. 고려 말기 유학의 학문적 경향은 유학의 요소 중에서 실제적인 정치 ,경제 ,법률과 문장을 학습의 대상으로 하는 한(漢),당(唐)나라의 학풍을 이어받은 반면에 조선 중기의 학문적 경향은 그 유학의 요소 중에서 주로 이론 방면이고 철학부분인 성리학을 연구의 대상으로 하는 중국 송(宋)나라의 학풍을 가졌던 것인데 즉 고려 말기까지 전래된 문장, 정치 중심의 한, 당 의 학풍을 답습하는 동시에 이론 중심인 리(理)학 중심의 성리학적 학풍이 혼합된 양상을 보인다.
2. 고려 말의 사대부들이 조선유교에 끼친 영향
안향(1243~1306),백이정(1247~1323)등에 의해서 수용되기 시작한 주자학은 고려 말에 일련의 개혁을 추진했던 신흥사대부의 이념적 토대가 되었다는 것이 학계의 통설이다, 안향의 교육진흥책과 주자 존중의 정신, 백이정의 주자서 도입, 권보(1262~1346)가 추진한 사서집주의 보급, 그리고 사서를 초장 시험 과목에 포함시킨 충목왕 즉위년(1344)의 과거제도 개정 등은 주자학 확산의 주요한 계기들이었다. 나아가 1367년(공민왕 16)에 대사성에 임명된 이색(1328~1396)이 교육체계를 사서오경제로 개편하고 정몽주, 이숭인 등을 교관으로 삼아 경학을 강론한 것은 주자학의 이론적 심화에 계기였다. 이런 여러 가지 제도적 도입은 새로운 신진사대부의 등장을 위한 좋은 토대를 제공해주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고려 후기의 성리학자들에게 성리학의 중심개념이라고 불리는 이(理)와 기(氣)에 대한 심오한 관심과 이해가 깊다고 보기엔 힘들다. 주로 그들은 시와 문장 짓기를 즐겨하며 경세론적인 실천적 면모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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