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고 해석
- 최초 등록일
- 2014.06.20
- 최종 저작일
- 2014.05
- 5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목차
없음
본문내용
《발해고》(渤海考)는 조선 정조 8년(1784년)에 규장각검서로 일하던 실학자 유득공이 발해에 관해 저술한 역사서이다. 유득공은 발해에 대한 전문 역사서가 없음을 통탄하고 조선과 중국 및 일본의 역사서 24종을 참고하여 직접 발해에 관한 역사서를 저술하였다. 1권본과 4권본의 두 종류가 있다. 신라와 발해를 남북국으로 부른 최초의 역사서이자 최초의 발해 전문 역사서이다.
1. 高麗不修渤海史하니 知高麗之不振也라.
고려불수발해사 지고려지부진야
고려는 발해사를 엮지 않았는데, 고려(의 세력)가 떨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2. 昔者에 高氏居于北하여 曰高句麗라 하고, 扶餘氏居于西南하여 曰百濟라 하고, 朴昔金氏 居于東南하여 曰新羅라.
석자고씨거우북 왈고구려 부여씨거우서남 왈백제 박석김씨 거우동남 왈신라
옛날에 고 씨가 북쪽에 거하여 고구려라 하였고, 부여 씨가 서남에 거하여 백제라 하였고, 박석김씨가 동남에 거하여 신라라 하였다.
3. 是爲三國이니 宜其有三國史한데, 而高麗修之하니 是矣라.
시위삼국 의기유삼국사 이고려수지시의
이것이 삼국이니 마땅히 이에 삼국사가 있었고, 고려가 이를 엮어낸 것은 옳다.
<중 략>
이때를 당하여(이 때에) 고려를 위해 헤아려 보면, 마땅히 급히 발해사를 편찬했어야 했다.
13. 執而責諸女眞曰 “何不歸我渤海之地인가! 渤海之地乃高句麗之地也”이라 하고서 使一將軍으로 往收之하였다면 土門以北은 可有이라.
(발해의 역사를 편찬한 역사서를) 잡고 여진을 꾸짖으며 (말하기를),“어찌 우리 발해의 땅을 돌아가지 않았는가? 발해의 땅은 곧 고구려의 땅이다.”라고 말했다면 한 장수로 하여금 가서 그것을 가져오게 하면 토문 이북의 땅을 가질 수 있었다.
14. 執而責諸契丹曰 “何不歸我渤海之地인가! 渤海之地乃高句麗之地也”이라 하고서 使一將軍으로 往收之하였다면 鴨綠以西는 可有也이라.
(발해의 역사를 편찬한 역사서를) 잡고 거란을 꾸짖으며 “어찌 우리 발해의 땅을 돌아가지 않았는가? 발해의 땅은 곧 고구려의 땅이다.”라고 말했다면 한 장수로 하여금 가서 그것을 가져오게 하면 압록 이서의 땅을 가질 수 있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