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의복의 역사(개항 뒤 옷의 역사) - 개화기, 일제 강점기, 해방이후, 박정희 정권시대, 영 패션 시대, 탈 유행 시대
- 최초 등록일
- 2014.06.30
- 최종 저작일
- 20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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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개화기 (1876~1910)
2.일제 강점기 (1910~1945)
3.해방이후 (1945~1960)
4.박정희 정권 시대 (1960~1980)
5.영 패션 시대 (1980~1990)
6.탈 유행 시대 (1990~현재)
참고문헌
본문내용
1.개화기 (1876~1910)
고종 13년(1876년) 강화도조약을 계기로 개항하면서 서양 문물이 유입되기 시작하였다. 서구 문명과의 접촉은 근대적 자각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과 구미 시찰, 외교 체결 등의 사건이 변화의 촉매체가 되고, 이때 참여하였던 개화파에 의해 여러 가지 개혁이 단행 되었다. 1884년 갑신의제 개혁의 관복 간소화, 1894년 갑오의제 개혁의 관복 개정, 1985년 단발령과 서구식 군복 채택, 1899년 외교관 복장의 양복화, 1900년 문관 복장의 양복화가 바로 그것이었다. 양복화는 궁중과 정부 요인 상류층에서 시작하였으며, 여성들은 서서히 자발적으로 받아들였다. 우리나라 의생활에서 서양 복식을 처음으로 받아들인 것은 별기군이었다. 조정에서는 중국에 영선사로 김윤식 이하 60여 명의 유학생을 선발하여 근대 무기 제조법과 군사 훈련법 습득 차 파견하였다. 중국에서 돌아온 이들은 1881년에 별기군을 창설하여 근대식 훈련과 무기를 갖추고 전투 실기를 익혔는데, 이때 복식도 서양복으로 바꾸었다.
(남자)
1. 두식
을미년 단발령과 망건의 사용이 폐지되면서 머리 모양이 달라지고 관모도 달라졌다.
상투머리 대신 짧은 머리, '중머리'또는 '하이칼라머리'를 하게 하였다. 관모에 있어서도 흑립만이 오랫동안 착용되었다.
특히 의관을 소중히 여기고 이를 갖추기 좋아했던 유림촌로들은 집에 있으면서도 맨머리로 있이 일이 없었는데, 대개는 간편하게 탕건을 착용하고 있었으며, 정자관 같은 것을 쓰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또한 상투 없는 맨 머리에 탕건을 쓰고 그 위에 흑립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면서 흑립, 망건, 정자관 등도 사라지게 되었다.
그 후 서울에는 관모점이 생겨 파나마모자, 맥고모자를 팔게 되고 중절모자도 생겨나서 전국으로 퍼져나가 일대 유행을 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한복에 모자는 익숙하게 되었다.
2.상의
(1)마고자
저고리 위에 덧입는 옷으로, 마괘라고도 한다.
원래 만주인의 옷이었던 것을 대원군이 만주보정부에서의 양거생활에서 풀려나와 귀국할 때(1887)에 입고 돌아와서부터 퍼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참고 자료
조효순 저, 우리옷 이천년, 미술문화 2001
전호태 저, 고구려 고분벽화의 세계,서울대학교 출판부 2004
김은정, 임린 저, 역사 속의 우리옷 변천사, 전남대학교출판부 2009
김정호 저, 우리 옷 역사 2000년, 글누리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