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봉조공체제와 동아시아 대외관계
- 최초 등록일
- 2014.07.06
- 최종 저작일
- 20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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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삼국과 수·당의 관계
A. 고구려와 수
B. 고구려와 당
C. 백제와 수
D. 백제와 당
E. 신라와 수·당
Ⅱ. 맺음말
본문내용
먼저 고구려의 경우, 조공과 책봉관계가 외교상의 한 형식에 불과하였을 뿐 별다른 구속력을 갖지 못하였다. 즉 고구려는 중국의 제왕조와 형식적으로 종속관계의 양식인 조공과 책봉을 교환하였으나 그 실상은 대등한 독립적 관계였다. 따라서 고구려의 대중관계에서 조공과 책봉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중국과 평화적 외교관계를 유지하고, 조공에 상응하여 중국으로부터 책봉됨으로써 국내에서 권위를 높이고 고위의 관작을 받아 고구려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려는 데 조공과 책봉은 유효하였다고 볼 수 있다.다음은 고구려와 수당의 조공책봉관계에 대한 내용이다.
A. 고구려와 수
589년에 수가 남조의 진 멸망시킴에 따라 하나의 강력한 제국에 의해 전 중국이 일원적으로 지배되는 통일시대가 재현되었다. 새로 등장한 중국의 제국도 조공책봉체제와 같은 간접적 지배체제보다는 군현체제와 같은 직접적 지배체제로써 중국의 바깥 지역을 지배하려 하였다. 이로 인해 한중 양국 간에 매우 심각하고 전면적인 충돌이 야기된 것은 필연적인 일이였다. 수가 북제와 진을 멸하고 고구려와 국경을 맞댄 뒤부터 고구려·수 양국의 관계는 긴장되기 시작하였다. 수는 진한과 같은 제국을 재건하였기 때문에 漢四郡이 설치되었던 요동을 다시 회복하려하였고, 고구려는 5세기초부터 점유하고 있던 요동을 탈취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수와의 일전을 회피하지 않았다. 양제시기에 이르러 중국통일을 완성하자 요동침공을 적극적으로 검토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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