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초지진의 역사
- 최초 등록일
- 2014.07.15
- 최종 저작일
- 20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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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I . 강화도
1 강화도의 지리적 특성
2 조선시대의 강화도
II . 초지진
1 초지진의 건설배경
2 초지진과 역사적 사건
3 현재의 초지진과 의의
III . 참고문헌
본문내용
강화도는 고려와 조선시대에 걸쳐서 개성과 서울에 이르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는 곳으로 외침 방어의 중요한 장소였다. 이에 따라 강화도에는 삼랑성, 강화산성, 초지진, 덕진진, 광성보, 갑곶돈, 강화외성 등과 같은 국방 관련 유적들이 많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고려시대 이후, 조선시대 숙종조에 이르러 진, 보, 돈대가 집중적으로 축성되었으며 신미양요 및 병인양요 등의 과정에서 많은 피해가 있었다. 그 후 1976년 강화국방유적정화사업의 일환으로 동쪽 염하 일대의 국방유적이 복원된 바 있다. 2000년 이후 강화산성 4대문 및 산성구간 복원 및 돈대정비 등 종합정비가 진행되고 있다.
<중 략>
2년 뒤에는 쇄국의 의지를 더욱 확고하게 만드는 기괴한 사건이 일어난다. 독일 상인 오페르트가 통상을 거절당하자 충청도에 있는 대원군의 부친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다가 실패한 사건이다. 오페르트 일행은 러시아 군병이라 자칭하면서 총칼을 휘둘러 지방 관헌조차도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는 어둠을 타서 남연군의 무덤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군수와 묘지기 및 몇몇 주민이 이를 막으려 했지만, 무장한 이들을 당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날이 밝아 주민들이 몰려오고 상황이 불리해지자 이들은 파낸 관곽(棺槨)까지 그대로 버려두고 도망갔다. 이 사건은 비록 미수에 그쳤지만 조선 국민을 분노하게 만들었고, 조선의 문은 더욱 굳건히 빗장을 지르게 되었다. 미국과도 충돌이 일어났다. 이미 병인양요가 일어나기 직전에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General Sherman) 호가 국경을 침입하여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통상을 요구했다. 그러다가 평양 군민(軍民)과 충돌하여 미국 상선이 침몰된 사건이 있었다. 미국은 이를 구실로 삼아 아시아 함대 사령관 로저스(Rodgers) 제독이 이끄는 5척의 군함으로 강화도를 공격했다. 병인양요 이래 국방력을 강화해 온 조선은 이에 맞섰고, 어재연이 이끄는 조선 수비대가 광성보와 갑곶 등의 지역에서 미국 군함을 격퇴시켰다.
참고 자료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강화군 문화관광
고교생이 알아야 할 한국사 스페셜, 2009.2.5, (주)신원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