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프리아누스교부의 '보편교회의 일치'에 관한 에세이
- 최초 등록일
- 2014.07.20
- 최종 저작일
- 20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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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초대교부학에서 다루는 키프리아누스교부의 '보편교회 일치'에 관한 짧은 에세이
목차
I. 서론
II. 본론
1)저술의 역사적 배경
2)'보편 교회의 일치'
III. 결론
본문내용
AD 200년 이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카르타고의 감독 키프리아누스는 카르타고의 부유 한 가정에서 태어나 이교도로 자라났고, 수사학 교육을 잘 받았으며, 아마도 법률 공부도 한 것으 로 짐작되지만 그가 AD 248년 카르타고의 감독이 되기 이전의 생애에 대해 알려진 것이 별로 없 다. 그는 수사학 교사로 성공하여 명망과 많은 재물을 가져다주었는데 이것은 그로 하여금 방종한 세상과 육감적 생활로 오도하게 하였다. 그럼에도 영적으로 만족을 얻지 못하다가, 중년에 이른 245-246년경에 기독교인으로 개종하였다. 키프리아누스는 카르타고 교회의 장로인 카실리아누스의 경건성을 흠모하여 ‘타스키우스 카실 리아누스 키프리아누스’로 그의 이름을 채용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영적 아버지로 여겼다.1) 자 신의 재산을 빈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는 세례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장로로 안수를 받았 고, 또 다시 얼마 지나지 않아 도나투스가 죽었을 때, 카르타고 교회의 감독으로 선출되고 임직 받아 9년 동안 그 직책을 수행하다가 AD 258년 9월 14일 순교했다.2) 순교의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AD 257년 8월에 발표된 발레리안의 첫 번째 칙령은 감독들, 장로들과 집사들은 잡 신들에게 절해야만 하고, 위반하면 추방을 명령하고 있으며, 기독교인들의 예배를 위한 모임을 금 지시켰다. 키프리아누스는 체포되어 8월 30일 카르타고 있는 아프리카 지방 총독 앞에 끌려갔으 며 카르타고에서 멀지 않은 쿠루비스로 추방돼 거기서 1년 동안 머물러야 했다. 두 번째 칙령은 감독들을 사형에 처하도록 명령했다. 키프리아누스는 AD 258년 9월 14일 새로운 총독 앞에 세워 졌으며, 절하기를 거부한 끝에 로마 제신들의 원수로, 칼로 참수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