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박헌영의 대미인식
- 최초 등록일
- 2003.06.26
- 최종 저작일
- 20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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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머리말
Ⅱ. 박헌영의 초기 대미인식 형성배경
Ⅲ. 박헌영의 대미인식
1. 미군정의 초기점령정책과 그 성격
2. 미 제국주의에 대한 인식 및 그에 따른 전술적 대응
Ⅳ.맺음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근 현대 역사의 인물 중에 박헌영만큼 남․북 모두에서 철저히 외면되고 있는 인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남한에서 박헌영은 해방 공간에서 선량한 민중을 선동하여 각종의 유혈 폭동을 일으키고, 이승만 정권 수립 이후에는 지하의 남로당 남조선노동당 [南朝鮮勞動黨] 줄여서 남로당이라고도 한다. 1946년 11월 조선공산당과 남조선신민당(新民黨) 및 조선인민당(人民黨)이 합동하여 창당되었다. 일제강점기 1925년 조선공산당을 결성한 공산주의자들은 광복이 되자 1945년 9월 20일 조선공산당을 재건하였고, 북한에는 같은 해 10월 북조선분국을 두었다.
원을 이용하여 남한 적화공작을 벌였던 빨갱이로 인식되고 있다. 그리고 북한에서는 일제하 공산주의 운동에서 계파적 이해득실에 매달려 종파투쟁을 일삼았던 종파분자로, 해방이후에는 미 제국주의의 간첩이고 반혁명 분자이며 민중들을 선동하여 죽음으로 몰아갔던 인물로 인식되고 있다.
공산주의자인 박헌영이 갖고 있던 제국주의 국가로서의 미국에 대한 인식과 노선의 내용은 곧바로 운동전개에 직결되었던 중요한 문제였다는데서, 현재 박헌영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가장 많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해방 이후 미군정시대 초기 박헌영이 보인 미군정에 대한 우호적 태도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어왔다. 비판하는 측에서는 박헌영이 미국을 해방의 원조자이자, 진보적 민주주의 국가로 규정하였고 이러한 정세인식의 오류가 남한 내 공산주의운동의 실패로 귀결되었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견해를 주장하는 대표적인 연구자가 김남식이다.
김남식, 『해방전후사의 인식2』(한길사,1985), 김남식, 심지연공저, 『박헌영의 역사인식과 대미관』(세계, 1987). p.76.
한편 이들의 주장과는 달리 부분적인 오류에도 불구하고 대체적으로 올바른 것이었다고 평가하는 견해도 있다. 이러한 견해에서는 미군정초기의 박헌영의 우호적 태도를 당시의 국제적 상황 및 국내적 여건을 고려해 볼 때 정당하고 현실적인 대응이었고 박헌영은 제국주의에 대해 올바르게 인식하고 있었으며 단지 미국과 미군정에 대한 전술적 대응의 차원에서 우호적인 태도를 취했던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러한 기존의 연구의 바탕 위에 이 논문에서는 당시의 객관적 상황을 고려하면서 박헌영의 대미인식을 긍정적으로 평가해 보고자 한다. 이와 더불어 박헌영이 일제 식민지시대 이래 제국주의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고 있었으며, 해방이후에는 미국이라는 압도적 규정력이 지배하고 있던 상황에서 민족통일전선의 수립에 의한 완전한 민족의 독립을 얻어내기 위해 미군정에 대해 한 때 우호적 태도를 견지했다는 것을 밝히고자 한다.
참고 자료
김남식, 『해방전후사의 인식2』(한길사,1985).
김남식, 심지연 공저, 『박헌영의 역사인식과 대미관』(세계,1987).
김남식, 심지연 공저, 『박헌영 노선비판』(세계, 1986).
김남식, 『남노당 연구』(돌베개,1988).
박갑동, 『박헌영- 그 일대기를 통한 현대사 재조명』(인간사,1982).
브르스 커밍스, 김자동역, 『한국전쟁의 기원』(일월서각, 1986).
고영민,『해방정국의 증언-어느 혁명가의 수기』(사계절, 1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