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부상에 대한 재조명과 세계시장에서의 역할
- 최초 등록일
- 2014.07.24
- 최종 저작일
- 20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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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보부상
1-1. 보부(부보)상의 의미
1-2. 보부상의 역사
1-3. 보부상의 활약
2. 보부상의 재조명
3. 보부상이 미치는 세계시장에서의 역할
본문내용
전통사회에서 시장을 중심으로 봇짐이나 등짐을 지고 행상을 하면서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교환경제가 이루어지도록 중간자 역할을 했던 전문적인 상인이다.보상과 부상을 총칭하는 명칭이며, ‘부보상’이라고도 한다. 보상은 주로 기술적으로 발달된 정밀한 세공품이나 값이 비싼 사치품 등의 잡화를 취급한 데 반하여, 부상은 조잡하고 유치한 일용품 등 가내수공업품을 위주로 하였다.또한 보상은 보자기에 싸서 들거나 질빵에 걸머지고 다니며 판매하였고, 부상은 상품을 지게에 얹어 등에 짊어지고 다니면서 판매하였다. 이에 따라 보상을 ‘봇짐장수’, 부상을 ‘등짐장수’라고도 하였다. 이들은 대개 하루에 왕복할 수 있는 정도의 거리를 표준삼아 형성되어 있는 시장 망을 돌면서 각지의 물화를 유통시켰다. 그러나 대부상·대보 상들은 수운(水運)과 우마차로 다량의 상품을 일시에 운반, 판매하기도 하였다.
부상의 기원은 고대사회에서부터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고대사회의 물품 운반수단은 소와 말도 있었지만 주로 사람의 머리나 등으로 운반되었기 때문이다.
부상 단이 조직된 것은 조선 초로, 이에 대해서는 이성계(李成桂)의 조선 개국에 공헌했기 때문에 그 조직을 허용했다는 설과, 이와는 달리 상류 계층과 무뢰한의 탐욕으로부터 그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조직했다는 설이 있다. 어쨌든 부상 단은 적어도 조선 초에 조직되어 같은 마음으로 결속한 것을 알 수 있으며, 그 뒤에도 조정에서는 국가 대사나 국난 위기 때 이들을 수시로 사역하였다.한편, 보상이 언제부터 조직을 갖게 되었는지는 속단하기 어려우나, 그것이 전국적인 조직을 갖게 된 것은 1879년(고종 19) 9월에 발표된 〈한성부완문 漢城府完文〉에서 찾아볼 수 있다.여기에 의하면, 이전부터 지역적으로 각기 정해진 규율과 두령인 접장의 소임이 있어서 군료를 통솔해 왔으며, 산재한 조직을 전국적인 상단으로 묶어 소규모 자본의 행상을 규합했음을 알 수 있다. 보상 단은 동료 간의 결속을 다지고 무뢰한과 아전들에 의한 폐해를 금함으로써 상권의 확립을 기하였다. 한성부에서 8도의 도접장을 차출하면 일종의 신분증인 도서(圖書 또는 驗標라고도 함)를 함께 발급함으로써 보상의 신분을 보장하였다.
참고 자료
디지털 한국 민족 문화 대 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국립민속박물관
세계일보
기업윤리브리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