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사] - 차와커피,차의전래,커피의원산지,커피의문화,인스턴트커피의전래
- 최초 등록일
- 2014.09.05
- 최종 저작일
- 20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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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I. 차
1. 우리나라 차의 전래
2.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차문화
II. 커피
1. 커피의 원산지
2. 식민지시대의 커피문화
3. 인스턴트커피의 전래
4. 60~70년대 다방문화
5. 80년대 다방문화
본문내용
우리나라의 차 문화는 2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고조선(古朝鮮) 시대에 시작해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오랜 역사 속에서 우리의 차 문화는 생활 속에 깊숙히 뿌리를 내려 각계 각층의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았으나, 다만 시대적 상황에 따라 흥망성쇠를 거듭해 왔다. 우리선조들은 차(茶)를 신성하고 성스런 것으로 여겨 하늘에 제사를 지내거나, 산천이나, 조상님들 제전에는 꼭 올리는 제수로 삼았다. 그 의식이 성스러우면 더욱 차는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명절에 꼭 차례(茶禮)를 올리는 것이다.
우리 차의 기원에 대한 몇 가지 가설이 있는데 인도 차 전래설과 중국차종 도입설, 자생설이 그것이다.
<중 략>
다방이란 조정이나 궁중의 여러 가지 행사에서 차를 준비하여 올리고 베푸는 등의 의례적인 찻일을 맡아 진행하는 관청을 말한다. 다방은 태조 때부터 있었으며 성중관(成衆官:궁궐을 지키고 임금을 모시는 일을 함)에 소속되어 팔관회, 연등회 등 조정의 크고 작은 의식 때와, 정월 초하루, 추석 등의 명절행사나 종묘제사, 사신맞이, 왕의 행차 등에서 차에 관한 일을 하였으며, 때로는 술을 올리는 일과 과일상을 차리는 일 등도 맡아 하였다. 또 의약과 치료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태의감이 다방에 소속되기도 하여 그 직무의 폭이 상당히 넓었다. 다방관리들은 대우가 좋았고 관리들은 다방에 선발되는 것을 영광으로 삼아서 명종때는 무신들이 다방을 겸직하게 해줄 것을 청하여 허락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말기에는 다방의 관리를 용인(庸人:용렬한 사람)이라 하여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하였다.
<중 략>
1805년에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이 유배지인 강진에서 차생활을 했다는 기록이 나온다.1805년 신유사화(辛酉士禍)로 강진으로 유배된 다산은 해남 대흥사(大興寺)의 큰 학승이었던 혜장(惠藏)스님을 만덕산의 백련사(白蓮寺)에서 만나게 되고 혜장의 주선으로 강진에서 멀지 않은 우이산 우두봉에 위치한 고성사로 거처를 옮겨 보은산방(寶恩山房)이란 현판을 걸었다. 열 살아래인 혜장과의 만남은 다산에게 있어서 반가움을 넘어 충격이었다.
그 때 다산은 차(茶) 와 선(禪)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이곳 다산초당은 훗날 다산의 발자취를 찾은 후학들의 성지가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