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유물 비교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화폐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바탕으로
목차
1. 서론
1) 고려시대 이전까지 화폐의 모습
2) 유물비교에서 ‘화폐’선정의 동기
2. 본론
1) 고려시대의 화폐
2) 조선시대의 화폐
3)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화폐의 공통점
3. 결론 및 후기
1)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화폐의 의의
2) 국립중앙박물관 방문후기
4. 참고문헌
본문내용
서론
역사적으로 화폐는 수차례 만들어졌고 유용한 경제수단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조선전기까지는 화폐가 본격적으로 유통되지 않았다. 고려시대 이전까지는 국가 경제 규모가 그만큼 확대되지 못한데다 실물가치가 있는 쌀이나 옷감이 화폐 기능을 대신 했기 때문이다. 화폐는 조선중기 이후 사회 경제의 규모가 커지고 상업과 유통 경제가 활발해지면서 적극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화폐를 도입하기 이전에 사용된 고대 화폐를 살펴보면 선사시대의 교환수단이 어떠한 것이었는지에 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자급자족적 경제생활단계를 지나 물물교환이 지배적이었고, 무기와 각종 생산기구·장신구·가축·곡물류 등이 물품화폐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 된다. 그리하여 물물교환 내지 물품화폐의 유통이 지배하던 시기에 일찍이 화폐경제가 발달한 중국으로부터 중국 각 시대의 여러 종류의 화폐가 한반도로 흘러들어 오게 되었다. 이에 따라 삼한시대에는 철을 생산하여 교환수단으로 사용하였는데 자체적으로 주조한 철정은 길쭉한 모양의 얇은 쇠막대로서 삼한과 가야 등에서 주조한 철전이 있었다. 그 이후 삼국시대에는 쌀·조·보리 등의 곡물류와 베·모시·비단 등의 견직물·마직물이 국가에 대한 세납과 지출수단으로 사용되는 동시에 일반유통계에서 물품화폐로서 사용되었다. 또한, 금·은과 같은 귀금속과 철 등이 일종의 칭량화폐로서의 기능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삼한시대에 교환수단으로 사용한 철이나 삼국시대에서 사용한 곡물류·견직물·마직물·금·은 등은 국가가 정책적으로 그 품질·체재 및 무게를 규격화해서 만들어 사용한 화폐였다기보다는, 물물교환 내지 물품화폐유통이 지배적인 원시자연경제체제에서 통용된 자연발생적 교환수단, 즉 실용성을 전제로 한 물품화폐와 본질적으로 성격을 같이하는 칭량화폐였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유물을 비교하는 데 있어서 ‘화폐’를 선정한 이유는 한국사 수업을듣는 경영학도로써 ‘화폐’가 우리 역사적 발전에 끼친 영향과 그 변천을 알고 싶었다. 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관람한 결과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화폐’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화폐의 형태와 도입 절차 등을 알아보며 비교해보고자 한다.
참고 자료
역사의 향기 : 조선시대 화폐 이야기-신병주
대한지방행정공제회, <지방행정> 59권687호 (2011), pp.68-69
원유한, 「한국 화폐사(고대부터 대한제국까지)」, 동국대학교 , 2006, 11쪽
중량을 재서 그 교환 가치를 헤아려 쓰던 화폐, 네이버 백과사전 참고
원유한, 「한국 화폐사(고대부터 대한제국까지)」, 동국대학교 , 2006, 13쪽
원유한, 「한국 화폐사(고대부터 대한제국까지)」, 동국대학교 , 2006, 31~35쪽
국립중앙박물관 방문하여 찍은 자료에서 인용
고려 시대에, 곡식을 저장하여 두었다가 흉년이나 비상 때에 가난한 백성들에게 대여하던 기관. 성종 5년(986)에 처음으로 만듬. 네이버 백과사전 참고
고려ㆍ조선 시대에, 물가가 내릴 때 생활필수품을 사들였다가 값이 오를 때 내어 물가를 조절하던 기관 , 네이버 백과사전 참고
고려 시대에 둔, 화폐 주조 기관. 해동통보를 만들었다. 네이버 백과사전 참고
국립중앙박물관 방문하여 찍은 자료에서 인용
고려 시대에, 주전도감에 속하여 돈을 주조하는 일을 맡아보던 벼슬아치, 네이버 백과사전 참고
국립중앙박물관 방문하여 찍은 자료에서 인용
원유한, 「한국 화폐사(고대부터 대한제국까지)」, 동국대학교 , 2006, 42~45쪽
고려 말기ㆍ조선 전기에, 닥나무 껍질로 만들어 쓰던 종이돈. 고려 공양왕 4년(1392)에 발행하였지만 본격적인 유통은 안 되었으며, 조선 태종 원년(1401)에 사섬서를 설치하고 이듬해 저화 2,000장을 발행하였다. 발행 초기에는 한 장이 쌀 두 말의 값어치를 가졌으나 그 뒤 돈의 가치가 계속 떨어져 겨우 쌀 한 되의 값어치를 가지게 되었으며, 중종 7년(1512)경에는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네이버 백과사전 참고
원유한, 「한국 화폐사(고대부터 대한제국까지)」, 동국대학교 , 2006, 58쪽
역사의 향기 : 조선시대 화폐 이야기-신병주 대한지방행정공제회, <지방행정> 59권687호 (2011), pp.68-69
역사의 향기 : 조선시대 화폐 이야기-신병주 대한지방행정공제회, <지방행정> 59권687호 (2011), pp.68-69
[네이버 지식백과] 당백전 [當百錢]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