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17세기 청교도 개관,공화정부,영국성공회 청교도의갈등
- 최초 등록일
- 2014.09.15
- 최종 저작일
- 20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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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개관
2. 청교도와 왕당파
3. 내란
4. 공화정부
5. 왕정복고
6. 존 밀턴 john milton, 1608~1674
본문내용
1.개관
17세기에는 일치된 감정과 즐거움을 찾아볼 수 없었다. 150년 전의 장미전쟁 이후로 처음 얼마동안, 내란으로 같은 영국인에게 총부리를 겨눴다. 이로 인해 국가가 파국에 직면하자, 17세기의 왕이나 신하들은 각자 자신의 개인적인 세계를 찾으면서 아름답게 정제된 우아함 속으로 숨어버렸다. 일반 국민들은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에 누렸던 조심스럽고도 경건한 생활을 해왔던 고도의 풍요로움에서 이제 전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17세기에 영국을 조각조각으로 갈라놓았던 가장 큰 사건들은 어쩌면 엘리자베스 시대 사람들이 이미 예견하고 기다렸던 것인지도 모른다. 엘리자베스 시대의 영국인들은 성공회 신교도와 그 성공회의 정화를 바랬던 사람들인 청교도들 사이의 평화가 불안한 평화임을 알게 되었고, 여왕의 관대하고 매력적인 인품에 크게 의탁하고 있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서거하자, 옥좌를 어느 편이 차지하느냐가 가장 큰 문제였다.
<중 략>
번역하는 것이 금지되었으며 이를 어기고 성경을 번역하는 자들은 무자비하게 박해하였다. (하지만 성경의 번역을 금지하던 로마 가톨릭의 공인 성경도 원어인 ‘히브리어-헬라어 성경’이 아니라 그것을 라틴어로 번역한 ‘벌게이트’였음) 종교 개혁가들은 민중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어야 한다는 사명으로 성경의 자국어 번역을 열렬히 진행하였는데, 독일에서는 루터가 그리하였으며 영국에서는 위클리프와 딘테일이 그러하였다. (결국 이들은 박해를 받았는데 위클리프는 사후에 그의 시신이 훼손당하였고 딘테일은 살아서 화형 당하였음)
영어로 된 성경을 민중의 손에 쥐어주기 위한 노력의 결과로 영국에서는 영어 성경이 보급되었는데, 위클리프 성경에 이어 딘테일 성경, 비숍성경, 제네바 성경 등이 있었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하였던 ‘1000인 청원서’의 결과로, 여러 종류의 성경을 하나로 통합하여 영국의 모든 교회에서 사용하기 위하여, 1604년에 제임스 1세가 성경 번역을 지시합니다. 그리하여 1611년에 성경 번역이 완료되었는데, 이것이 유명한 ‘킹제임스성경’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