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대용장군과 거북선
- 최초 등록일
- 2014.09.25
- 최종 저작일
- 20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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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Ⅱ. 나대용장군의 생애
Ⅲ. 내가 생각하는 나대용장군의 생애
Ⅳ. 역사속의 거북선
Ⅴ. 맺음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우리나라에는 역사적 인물의 이름을 딴 잠수함들이 있다. 장보고함, 이순신함, 최무선함, 나대용함 등 여러 잠수함들이 있다. 나대용함은 경남 진해 해군의 잠수함이다. 현재 나주와 자매결연을 맺어 지속적인 교류를 하고 있다. 나대용함과 나주가 교류하는 이유는 나주에는 나대용장군의 생가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거북선을 이순신 혼자만이 만들었다고 대부분 알고 있다. 불멸의 이순신에서 거북선의 제작자로 나대용이 등장한다.
Ⅱ. 나대용장군의 생애
나대용(羅大用) 1556(명종11)~1612(광해군4). 조선 중기의 무신이다. 본관은 금성(錦城). 자는 시망(時望). 호는 체암(遞菴)이다. 임진왜란 때 수군(水軍)의 장군 ·거북선의 건조 책임자이다. 나대용장군은 1556년(명종 11년) 7월25일 전남 나주 태생으로 28세(1583년·선조 16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 봉사(奉事)로 재직하다 32세(1587년·선조 20년)에 훈련원 봉사를 사직하고 낙향하여 거북선 연구에 몰두, 1590년 나주시 문평면 오룡리(당시 오륜동)의 방죽골에서 거북선 실험 제작에 성공하였다. 임진왜란 1년 전인 1591년(선조 24)에 전라좌수영 수사(全羅左水營水使)로 있는 이순신장군을 찾아가 그 동안 연구한 거북선의 설계도를 보이는 한편 국방에 대한 계책을 아뢰었다. 충무공은 크게 기뻐하여 그를 막하(幕下)에 두고, 거북선 건조를 위시한 모든 전구(戰具)의 준비 계획과 추진에 참여시켰다. 전선(戰船) 감조(監造) 군관으로 들어가 거북선 및 각종 무기 제작 책임자로 종사하였고, 임진왜란 발발 해인 1592년(선조 25년) 4월12일 거북선을 진수하여 발포실험을 성공했다.
임진왜란 당시 나대용장군은 충무공 이순신장군을 도와 손수 만든 거북선을 이용하여 옥포해전(1592년 5월7일), 한산대첩(1592년 7월8일)에 참전하여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특히 사천해전과 한산대첩에서는 적탄에 중상을 입기도 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