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 양식 일식 중식의 역사, 양식 전래 과정, 중식 전래 과정, 일식 전래 과정
- 최초 등록일
- 2014.10.13
- 최종 저작일
- 20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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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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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양식 전래 과정
1) 손탁호텔
2. 일식 전래 과정
1) 아지노모도 전래과정
2) 아지노모도 광고
3. 중식 전래 과정
1) 임오군란과 자장면
2) 호떡과 당면
본문내용
1.우리나라 양식 전래 과정
그림 2
손탁호텔 라벨
개화기에 일어난 식생활의 변화는 청, 일, 러시아 등 외국과의 수교가 이루어짐에 따라 외국의 식문화가 소개되기 시작. 서양 요리가 대중에게 선 보인 것은 한말 고종이 아관파천을 하면서 시작된다. 당시 러시아 공사 웨베르의 처형인 “손탁”이 1902년 손탁호텔을 경영하였다. 당시 손탁호텔은 서양식을 먹을 수 있는 첫 레스토랑 이였으며 한말 상류사회 각계인사들에게 서양요리를 제공한 것으로 문헌에 남아있다. 그러나 조선호텔 지배인이었던 데라자와씨가 쓴 1921년 5월 16일자 독립신문 기사에서 일반인들은 서양요리를 먹는 것이 매우 서툴고 어색해 하는 사람이 많다는 내용이 실려 있어 일반인들에 대한 보급은 다소 늦어진 것을 이 글로 집작할 수 있다.
<중 략>
지리적 근접성과 화상에 대한 청국정부의 지원, 청국정부의 화공 송출정책 등의 영향으로 조선 내 화교의 대다수가 산둥사람 이었다는 사실은 그들의 향토음식인 자지앙미옌이 조선으로 전파될 개연성도 매우 높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19C말 조선과 청국의 여러 정치적?사회적 상황을 감안해볼 때 1882년 인천항 개항 후 조선으로 대거 건너오기 시작한 산둥지방 화상?화공들에 의해서 한국의 자장면이 유래되었다는 사실은 충분한 설득력을 갖는다.
또한 박태원의 소설「성탄제」가운데 “나는 언제든 사내를 졸라 식구 수호대로 자장면을 시켜왔다.”는 구절에서 보듯이, 그때에도 중국 음식 가운데 자장면이 큰 인기를 끌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