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 집의 역사, 개항이후(1876), 식민지 시대의 집
- 최초 등록일
- 2014.10.13
- 최종 저작일
- 20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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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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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개항이후(1876)
서양양식건물
세창양식
2. 식민지 시대의 집
1) 하층 서민의 집 토막(土幕)
2) 새로운 양식의 집
(1) 영단주택의 건설
(2) 문화주택
(3) 요(寮)의 출현
3) 서양식 공공건물
(1) 서울역사
(2) 조선은행(한국은행)
(3) 경성부청사(서울특별시청)
3. 광복 후
1) 월남민들의 해방촌
2) 달동네
3) 공장지대의 벌집
(1) 광주대단지
(2) 광주대단지사건
4) 아파트의 등장
(1) 아파트 난방의 변화
(2) 시민아파트의 등장
(3) 와우아파트
5) 새마을 운동과 농촌의 변화
6) 타워펠리스
4. 나오는 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1. 들어가는 말
인간에게 집은 꼭 필요한 휴식 공간이다. 하물며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우리나라에서는 꼭 필요한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집은 우리의 자연에 맞게 주위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지었었지만, 서양의 문물이 들어오면서 우리 전통 집은 서서히 사라지고 이제는 민속촌을 가야 볼 수 있는 실정이 되었다.
우리는 전통적인 집의 형태에서 오늘날 집의 모습으로 변화하는 과정과 지금의 집의 형태가 정착하게 되는 과정을 다루려고 한다. 그리고 집이란 그 곳에 사는 사람의 삶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집을 통하여 그 집에 살던 사람들의 생활상을 비추어 보도록 하겠다.
1. 개항 이후(1876~1910)의 건축
「1876년 일본과 체결한 강화수호조약을 시작으로 미국(1882), 영국 ․ 독일(1883), 러시아 ․
이탈리아(1884), 프랑스(1886), 오스트리아(1892) 등 구미열강과도 수호통상을 체결하였다. 일본과 최초로 맺은 강화수호조약에 의거 부산항(1876.10), 원산항(1880.5), 인천항(1883.1)이 차례로 개항 되었다. 이들 개항장은 우리나라의 요지로서 국가의 기밀 ․ 국방 ․ 전략상 중요한 곳이었으며, 특히 한성의 관문인 인천제물포항은 국방 ․ 정치 ․ 경제적으로 중요한 장소인 관계로 6차례에 걸친 회담 끝에 개항되었다. 이어서 아관파천 이후 구미열강의 이권쟁탈을 계기로 목포항 ․ 진남포항(1897.10), 마산항 ․ 군산항(1899.5) 등이 2차적으로 개항되었다. 이들 개항장 역시 군사 및 경제적 요충지로서의 성격을 지닌 곳이었다.
<중 략>
2. 식민지 시대의 집
1) 하층 서민의 집 토막(土幕)
우리나라에 서양식의 집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개화기를 거쳐서 이다. 그리고 식민지 시대에 본격적으로 서양식 집이 증가하는데 그와는 별도로 새로운 형식의 집이 등장하였는데 그 집은 바로 토막이다. 토막이 무엇인지 알려면 토막이라는 말의 뜻을 알아야 할 것이다. 토막의 어원은,「막(幕)」은 조선어의「막」에 해당하는 자(字)이며 주막 · 원두막 · 오막살이 등의 막(幕)과 어원이 같으며 「토(土)」는 토벽 또는 황벽(荒壁)이라는 정도의 뜻일 것이다. 요컨대 「토막(土幕)」은 허술한 움막을 가리키는 말이다.
참고 자료
김정동, 『김정동교수의 근대 건축 기행』, 푸른역사, 1999
이선민,「1930년대 都市 勞動者의 住居難과 住居樣態의 變化」, 2001
이신철,「월남인 마을 ‘해방촌’(용산2가동) 연구」,『서울학연구』, 2000
김종화,「都市貧民에 관한 硏究」,『法政論叢』,19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