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경군과 부병제
- 최초 등록일
- 2014.10.20
- 최종 저작일
- 20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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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경군
①2군
②6위
2)부병제
3)군반제
◇경외군혼성제
Ⅲ.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 서론
경군의 기원은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정부가 지방의 호족들이 사적으로 유지하던 군사력을 일원적인 중앙군조직으로 재편성하려고 노력한 데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중앙군 조직의 재편성은 태조 때부터 시도되었는데, 성종 때를 전후하여 지방의 군사력이 해체되고 2군과 6위의 새로운 군사조직이 마련되었다.
고려의 중앙 군제인 2군 6위는 무반관료의 장교와 일반 군인들로 편성되어 있었다. 이들은 흔히 군반씨족(軍班氏族)이라는 이름의 출신자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면 이 군반씨족은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었을까? 이들의 군역 담당 방식과 신분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부병제(府兵制)로 파악하는 입장과 군반제(軍班制)로 이해하는 입장이 서로 엇갈려 왔다.
<중 략>
군반제설에서 하나 더 주목되는 사항은 선군(選軍)에 관한 것이다. 선군이란 군인직을 자손에게 계승하지 못하여 결원이 생기는 경우에 장용(壯勇) 건장하고 용감함. 또는 그런 청년.
한 자를 뽑아 보충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 업무를 관장한 관청의 이름도 선군이었으며 그 장은 선군별감(選軍別監)이었다.
선군의 대상이 된 사회신분층은 하급양반으로부터 백정(白丁)과 천인(賤人)에게까지 미쳤지만 주대상은 일반 양인신분인 백정층(白丁層)이었다는 것이다.
이들이 경군으로 선발되었다는 것은 양인(良人)이 중간계층으로 신분이 상승된다는 뜻까지 내포한다. 그리고 나아가 다시 무반으로 승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게 되었음도 의미한다. 이처럼 고려의 군인층은 사회신분 변동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경외군혼성제
경외군혼성제(京外軍混成制)에서는 개경 거주 경군에게만 군인전이 지급되었고 지방 농민군은 양호(養戶)가 배정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경외군혼성제설은 고려 전기 2군 6위의 군제가 내포하고 있는 부병제적인 요소와 군반씨족제적인 요소를 절충적으로 해석하였는데, 이에 따르면 고려 전기의 중앙군은 개경에 거주하는 비교적 소규모의 전업적인 특수 군인층인 경군과 윤번제(輪番制) 돌아가며 차례로 하는 방식이나 제도.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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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피디아 『고려 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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