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록산의 난의 원인, 경과 및 결과와 그 영 향
- 최초 등록일
- 2014.10.20
- 최종 저작일
- 20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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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리말
2. 절도사(節度使) 안록산(安綠山)
3. 안사(安史)의 난의 원인
4. 안사(安史)의 난의 경과
5. 안사(安史)의 난의 결과
본문내용
1. 머리말
중국 대륙은 유사 이래 넓은 땅의 크기만큼 이나 수많은 국가와 왕조가 존재했었다. 하(河)·은(殷)·주(周)를 제외한 통일왕조를 기준으로 본다면 진(秦), 한(漢), 수(隋), 당(唐), 송(宋), 원(元), 명(明), 청(淸), 중화민국(中華民國)이 있었고 현재 중국 대륙을 다스리고 있는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 있다. 이들 국가 중에서 필자가 가장 관심이 많은 나라는 당(唐)이다. 다른 국가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당은 매우 개방적이고 세계적인 제국이었다. 실크로드를 통한 서방과의 교역은 끊이질 않았고, 탈라스 전투에서 서방과의 직접적인 충돌도 있었다.
<중 략>
2. 절도사(節度使) 안록산(安綠山)
안록산(安綠山)은 돌궐의 무장이던 이란계 소그드인을 아버지로, 돌궐여인을 어머니로 한 혼혈이민족으로, 평로번진의 절도사가 소재하는 영주에서 태어났다. 역시 돌궐계의 혼혈이민족으로 안록산이 죽은 후 난을 지도한 사사명(史思明)과 고향이 같다.
이와 같은 출생배경을 가진 안록산은 돌궐어를 비롯한 6개 언어에 능통하였으므로 젊은 나이에 호시아랑(互市牙郞)이 되었다. 이는 북변 교역장의 통역 겸 중개인이었다. 이어서 범양절도사(范陽節度使) 장수규(張守珪)에게 인정을 받아 착생(捉生)으로 채용되어 절도사 군단에서의 첫걸음을 내딛게 된다. 그는 곧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였고 이후 편장(偏將)·평로병마사(平盧兵馬使)·범양절도부사(范陽節度(副使)·평로군사(平盧軍使)를 역임하며 장성 밖의 평로(平盧)와 장성안의 범양(范陽) 두 군단에서의 중추적인 지위를 순차적으로 밟아 올라갔다.
아울러 안록산은 중앙으로부터 그 지역의 시찰을 위해 관료가 파견될 때마다 많은 뇌물을 주어 현종의 총애를 얻고자 애썼는데, 그 결과 마침내 742년 평로절도사(平盧節度使)에 임명되기에 이른다.
참고 자료
누노메 조후·구리하라 마쓰오 외, 『중국의 역사』, 혜안, 2001, 229, 235, 239쪽.
후지요시 마쓰미, 『아시아의 역사와 문화』2, 신서원, 1999, 235~24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