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루과이 라운드
- 최초 등록일
- 2014.12.02
- 최종 저작일
- 20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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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우루과이 라운드
2. 문제점
1) 이행계획서 수정
2) 쌀 개방
3) 관료들의 전문성 부족
3. 경과
1) 쌀 관세화 유예 종료
2) 쌀 산업에 대한 투자
4. 정부역할
5. 참조문헌
본문내용
1. 우루과이 라운드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은 86년에 시작하여 94년에 끝났다. 우루과이라운드라는 우루과이에 있는 조그만 도시 푼타델에스타에서 시작되었다. 무역질서을 유지하는 근간이던 GATT체제는 명칭인 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에서 보듯이 기구(Oragnization)가 아닌 협정의 형태로 출범하였다.
한국의 경우 1993년 12월 한국정부가 쇠고기, 돼지고기, 고추 , 마늘 등 14가지 농축산물의 수입 전면 자율화 결정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 추진 속에서 이루어진 결정이었다.
“세계는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는 말로 입을 연 김영삼 대통령은 제조업 수출을 통한 경제발전을 위해 농축산물 시장 개방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며 정부가 농가의 손실을 보장할 터이니, 농민들은 참고 견뎌 달라는 주장을 하였다.
국제적으로 가격경쟁이 되지 않는 농산물을 개방하는 것은 농민들로서는 엄청난 문제였다.
최종적으로는 한국이 쌀, 일본의 쌀, 필리핀의 쌀, 이스라엘의 양고기등 일부품목이 관세화 예외로 인정되었다.
2. 문제점
1) 이행계획서 수정
협상이 타결됨에 따라 각국은 이행계획서(cs)를 작성하여 제출했다.
각국이 이행계획서를 제출 하게 되고 일본의 이행계획서에는 종량세, 국영무역등 다양한 보호 장치가 들어있어 우리도 국영무역을 새로이 반영하고 종량세 대상품목을 확대하는 등 수정하여 제출하였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부분은 이행계획서를 미국등 주요 농업 수출국 등의 요구에 따라 수정하면서 나타나게 되었다.
국내적으로 한 글자도 수정할 수 없다던 이행계획서를 언론보도를 통해 수정되었음이 밝혀졌다.
2) 쌀개방
특히나 문제가 되는 항목은 쌀 이다.
94년 당시에는 전면개방 대신 높은 관세를 매겨, 20년간 전면개방을 유예하기로 했다.
수십 년 간의 산업화 기간 동안 저곡가 정책으로 희생당했던 농민들에게 또다시 우루과이 라운드 라는 희생을 정부가 강요한 셈이다.
불만이 폭발한 농민들은 서울시내 곳곳에서 시위를 하며, 후에 시민, 대학생 들도 동참하게 되었다.
참고 자료
[1993년 12월 15일 우루과이 라운드 타결] 경향신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
[우루과이 라운드 농산물 협상] 국가기록원 http://www.archives.go.kr/next/search/listSubjectDescription.do?id=004904
[우루과이 라운드 이후 20년만에 쌀시장 전면개방] 미디어스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3151
[우리 쌀 지키기, 우루과이 라운드의 추억] 한국 농어민 신문 http://m.agrine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9729
[쌀 관세화란?] 다음 블로그 봄바람 휘날리며 http://blog.daum.net/d0p6895tqr/1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