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난의 발생과 무신정권의 성립
- 최초 등록일
- 2014.12.30
- 최종 저작일
- 2012.09
- 4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할인쿠폰받기](/images/v4/document/ico_det_coupon.gif)
목차
Ⅰ.서론
Ⅱ.본론
1.무신정권의 성립
1)성립기
2)확립기
3)붕괴기
2.무신정권의 의의
Ⅲ.참고문헌
본문내용
Ⅰ.서론
━무신난이란?
무신의 난(武臣―亂) 또는 경인의 난(庚寅-亂)이라고도 하며 정변의 주도적인 역할을 한 정중부의 이름을 따서 정중부의 난(鄭仲夫―亂)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170년 이후 계속된 무신정권은 1270년, 마지막 무신집권자인 임유무(林惟茂)가 살해당하기까지 100년간 존속되었다.
무신정변(武臣政變)은 고려시대 의종 24년(1170년) 8월에 상장군(上將軍) 정중부(鄭仲夫)와 이의방(李義方),이고(李高)등의 휘하장수들이 보현원(普賢院)에서 일으킨 쿠데타이다.
정중부 등 주동자들은 사람을 시켜 ‘무릇 문관을 쓴 자는 비록 서리(胥吏)라도 죽여서 씨를 남기지 말라’고 외쳐 선동하며 거의 모든 요직의 문신들을 죽이고 왕마저 폐위하고 왕제인 익양공(翼陽公) 호(晧)를 국왕으로 삼았다. 이 사람이 바로 19대 임금인 명종(明宗)이다. 이때가 바로 1170년이고 이로부터 정권은 자연히 무신들 손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무신난의 발생과배경
표면적으로는 김부식(金富軾)의 아들 김돈중(金敦中)이 대장군인 정중부의 수염을 촛불로 태운 일이나, 젊은 문신 한뢰(韓賴)가 대장군 이소응(李紹膺)의 뺨을 때리는 사건이 도화선이 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 무신난의 배경에는 무관을 경시하고 문관을 우대하는 고려의 우문정책이 있었다.
고려를 건국한 세력은 무장(武將)들이었지만, 과거제도와 유교주의가 채택됨으로써 차차 문치를 지향하는 사회로 변모되었다. 여기에서 같은 지배층이라 하더라도 문신의 지위는 높아지고, 상대적으로 무신의 지위는 낮아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전쟁이 발생했을 때에도 그 최고지휘관은 문신이 되었고, 무신은 그 아래에서 지휘를 받았다.
참고 자료
『고려사』
『고려사절요』
『한국사』 7(국사편찬위원회, 1973)
『고려시대사』 하(박용운, 일지사, 1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