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정부 수립과 활동
- 최초 등록일
- 2014.12.30
- 최종 저작일
- 20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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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임시정부의 수립
Ⅱ. 임시정부
Ⅲ. 상해임시정부로의 통합
Ⅳ. 임시정부의 활동
Ⅴ. 환국
Ⅵ. 임시정부의 역사적 의의
본문내용
Ⅰ. 임시정부의 수립
임시정부 수립과 된 3․1 운동의 관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3.1 독립운동의 직접적 결과로 수립되었다. 3.1운동 봉기와 동시에 지하신문으로 발행된 조선독립신문 제 2호(1919년 3월 3일자)는 임시정부의 수립에 대하여 국민들에게 담음과 같이 보도.공포하였다.
가정부(假政府) 조직설
일간(日間) 국민대회를 개최하고 가정부를 조직(組織)하며 가대통령(假大統領)을 선거 한다더라. 안심안심(安心安心) 불구에 호소식(好消息)이 존(存) 하리라.
이 자료는 짧은 분량임에도 많은 것을 알려준다 첫째 임시정부의 수립은 3.1 운도과 동시에 기획되고 공포 되었다. 수립예정을 알린<조선독립신문>의 발행일자는 3.1운동이 일어난 이틀 후인 3.3일자로서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파급되기 시작된 때이다. 즉 임시정부의 조직은 3.1운동의 기획, 추진세력에 의해 3.1운동과 동시에 기획되었고 이와 동시에 3월 3일 국민들에게 조선돌기신문등을 통해 널리 알려진 것이다. 그 이후 3.1운동은 독립국가 건설의 일환으로서“임시정부의 수립”을 목표로 하였다. 뿐만 아니라 조선독릭신문의 발행자가 3.1운동으 핵심적인 주체세력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선독립신문은 3.1운동 기획시 이미 3.1 운동의 한국민족 측 기관지의 일종으로 동시에 기획되었다. 조선독립신문은 천도교 계열의 보성전문학교 교장 윤익선이 민족대표 33인의 천도교 측 1인인 이종일 등과 협의하여 발행한 전단 성격의 3.1운동 지하신문이었다.
둘째 임시정부는 민주공화제로 수립될 것임을 공표하였다. 위의 조선독립신문 제 2호의 기사자료를 보면 임시정부의 정치체제는 ‘공화정’으로 한다는 사실을 명백히 선언한다. 이것은 위의 자료에서 “가(假) 대통령(임시대통령)을 선거하더라” 는 문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더 논의할 여지도 없이 ‘임시대통령의 선거’는 ‘공화정체를 의거한 임시정부의 수립’이 처음부터 정립되어 있었다.
참고 자료
이기백 <한국사신론>
강만길, <고쳐 쓴 한국현대사>
김희곤, <대한민국임시정부 연구>
이현희, <대한민국임시정부사 연구>
고정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현대사적 성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