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간섭기 통치조직의 변화와 려, 원 관계
- 최초 등록일
- 2014.12.30
- 최종 저작일
- 20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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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2. 본론
2.1. 원 간섭 하의 통치변화
2.2. 원의 일본원정
2.3. 원의 내정간섭과 인적·물적수탈
3. 결론
4. 참고문헌, 참고논문
본문내용
1. 서론
1231년 본격으로 시작된 몽골 군의 한반도 침략은 원종이 1260년 6월 2일(戊午, 사월 스무 하루) 몽골 군의 도움을 받아 고려의 국왕으로 즉함으로써 일단 종식된다. 그러나 이후 공민왕 5년(1356) 기철과 노책의 역모를 계기로, 백련교도의 봉기와 원조 지배집단 내부의 권력투쟁으로 인해 지방과 외번에 대한 원조 중앙의 통제력이 약화된 틈을 타서 7월 25일(乙亥, 유월 스무 엿새) 지정 연호의 사용을 정지할 때까지 고려는 원의 지배와 간섭 아래 놓이게 되었다. 늘 독자 권력을 유지해 왔던 한민족 사회가 고려군민의 30년에 걸친 항쟁에도 불구하고 결국 몽고족의 군사 침략에 굴복하여 실질인 외세의 지위를 받아들인 것이다. 수많은 인민이 희생되고 귀한 문화재가 파괴된 데에 그치지 않고, 권력의 독립성마저 상실함으로써 끝내 한민족 사회는 문화 자존감과 정체성마저 심각하게 유린되고 훼손되었던 고려는 100년 가까이 지속된 몽골 정권의 한반도 지배로 정치와 사회, 경제와 문화면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2. 본론
가. 원 간섭하의 변화
1) 부마국으로 전락
30년여 년 간의 지루한 전쟁 끝에 1259년 고려 태자의 입조와 개경환도를 조건으로 강화가 이루어지고 이후 강화를 둘러싼 국내 정치세력 간의 알력과 반목 속에서 고려의 신속으로 종결되는 듯싶었으나 고려 원종은 원과의 외교적 줄타기가 계속되는 동안 쿠빌라이 칸에게 과감한 통혼을 요청해 성사시켰다. 그 결과 고려 원종의 태자(충렬왕)와 원 세조 쿠빌라이의 딸인 제국대장공주와의 혼인이 이루어지게 된다(1274, 원종15년). 이후, 고려는 원나라 제실(帝室)의 공주를 정비(正妃)로 삼고 그 비의 몸에서 난 아들이 왕위를 잇는 것을 원칙으로, 충렬왕부터 원 간섭에서 벗어나는 공민왕에 이르는 시기까지 역대 고려왕들은 원 공주를 왕비로 맞이하였다. 말하자면 고려는 원나라의 부마국(駙馬國 또는 속국屬國)이 된 것이다.
고려가 원의 부마국이 됨으로써 원 황실의 사위가 된 고려국왕은 원 황실의 일원이 되고 그 안에서의 지위도 높아 번번하게 원에 입조하였을 뿐만 아니라 상당한 발언권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참고 자료
이이화, 한국사이야기7 : 몽골의 침략과 30년 항쟁, 한길사.
신형식 외, 한국통사, 주류성, 2014.
김호동, 고려는 왜 원(元)의 부마국이 되었을까?,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윤은숙, 여·몽 관계의 성격과 동아시아의 국제관계, 강원대학교 사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