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 고려시대의 소방 역사
- 최초 등록일
- 2015.01.07
- 최종 저작일
- 2015.01
- 3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할인쿠폰받기](/images/v4/document/ico_det_coupon.gif)
목차
1. 삼국시대의 소방
2. 통일신라시대
3. 고려시대
본문내용
1. 삼국시대의 소방
1) 병란 등으로 인해서 주민들이 인가에 인접하여 도성이나 읍성을 짓게 되어 화재가 사회적 재앙으로서 등장을 하게 된 시기이다.
2) 왕이 직접적으로 화재 현장의 이재민들을 위문, 구제를 함으로써 화재가 사회적 재앙으로서 인식이 되었고, 국가적인 관심사였다.
3) 삼국시대의 소방활동 및 기록
(1) 소방활동
가. 도성 : 성민들과 군사들이 협동을 하여 화재를 진압을 하였다.
나. 지방 : 부족적 성격에 의해서 부락의 단위로서 화재를 진압을 하였다.
(2) 삼국사기의 기록
- 신라시대(서기 262년) 미추 이사금 원년에 금성 서문에 화재가 발생을 하게 되어 민가 100여 동이 소실이 되었다라는 기록이 있고, 서기 596년 진평왕 18년에 영흥사에 불이 나게 되어 왕이 친히 이재민을 위문, 구제를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2. 통일신라시대
1) 백성이 지붕을 풀로 넢지 아니하고 기와로 덮었으며, 밥을 지을 때 나무를 사용을 하지 않고 숯을 사용을 했었다라는 점은 당시에 주민들의 화재예방의식이 아주 높았다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2) 통일신라시대까지는 별도의 소방조직이 없었으므로 백성 및 군대가 화재를 진화를 하였다.
3) 통일신라시대의 소방조직 및 제도
(1) 삼국시대와 마찬가지로 백성들과 군부가 소방활동을 실시를 하였다.
(2) 지방에까지 군대가 배치가 된 것으로 보아서 지방에서는 군대에 의하여 소방활동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3. 고려시대
- 고려시대에는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보다 화재가 더 많이 발생을 하였는데 이는 인구가 증가가 되고 대형건물이 들어선 데다가 병란이 잦은 데에 그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도움이 도읍지였던 개경은 지역이 협소하여 건물들이 밀집하였고, 초옥이 대부분이어서 한 번 화재가 발생을 하면 민가, 상가로 연소확산이 되어 수백 동씩 연소가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특히 이 시대에는 방화와 왜구의 방화 및 약탈이 심하여 각 궁전과 창고의 대형화재가 많았던 것을 볼 수가 있다.
참고 자료
소방학개론(2014), 출판사 : 동화기술, 저자 : 정경문 외 10명
소방학개론(2007), 저자 : 조동훈 외 6인, 기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