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소방 역사
- 최초 등록일
- 2015.01.07
- 최종 저작일
- 20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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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금화법령
2. 금화조건제도
3. 금화도감
4. 수성금화도감
5. 금화군과 멸화군
6. 5가작통법과 금화 및 의용소방조직
7. 구화기구 및 흡수구
8. 참고문헌
본문내용
- 조선시대에는 한성부를 비롯하여 평양부, 함흥부 등 도시들이 밀집 및 복잡해지게 되고 수공업의 급속한 성장과 상업도시로서 발달을 하게 됨에 따라서 전국 각지에서 대형화재가 발생을 하게 되었으며, 병란 및 민란 등으로 궁궐의 화재 또한 극심하였다.
이에 따라서 이 시대부터 소방의 고유조직이 탄생을 하게 되었는데, 특히 세종대왕 때에는 금화도감을 설치를 하고 금화군을 편성을 하여 화재에 대해서 방비를 하는 등의 새로운 소방제도가 가장 많이 마련이 되었다.
<중 략>
3) 포상 및 사면제도
(1) 범인을 체포를 한 자에게는 범인의 가산으로 상을 주었다.
(2) 불을 지르는 자를 잡아서 고발을 한 사람 중에서 양인에게는 관직을 주었으며, 천민은 양민으로 신분을 상승을 시켜 주고, 면포 200필을 포상을 하였다.
(3) 실화 및 방화자 중에서 자수를 한 자는 사정에 따라서 죄를 사하여 주기도 하였다.
(4) 체포를 한 화적은 반란에 준하여 극형에 처하였다.
4) 상황보고기준 및 계통
(1) 화재가 났을 때에 와가 3간, 초가 5간 이상의 건물이 소실이 되거나 화재로 인하여 인명이 상해되었을 때에는 왕에게 서면으로 보고를 하였다.
(2) 정조시대에는 실화건물이 10호 이상이거나 사장자가 5 ~ 6인 이상이 되면 승정원을 통하여 왕에게 보고를 하도록 하였다.
<중 략>
- 금화도감은 상비소방수제도로서의 관서는 아니지만 화재예방을 위한 독자적 기구를 갖추었다라는 데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소방관서라고 할 수가 있다.
1426년 세종 8년 2월에 한성부 내에서 두 번의 대화재로 인해서 백성의 생명과 재산보호의 목적으로서 병조에 금화도감을 설치를 하게 되었다. 이것이 최초의 소방책임수행기관으로서 오늘날의 상비소방제도의 기능이라고 할 수가 있다. 소방관서는 아니지만 화재를 방비를 하는 문제로 독자적인 기구를 갖추었다라는 점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소방관서라고 할 수가 있다.
참고 자료
소방학개론(2014), 출판사 : 동화기술, 저자 : 정경문 외 10명
소방학개론(2007), 저자 : 조동훈 외 6인, 기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