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 통합을 위한 서독의 동방정책-독일 사회민주당(SPD)이 제시한 신동방정책을 중심으로
- 최초 등록일
- 2015.01.21
- 최종 저작일
- 20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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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서론-동서분단과 1960년대까지의 동방정책
2.본론
2-1.빌리 브란트의 집권과 연립정부 구성
2-2.신동방정책 실시와 그 경과
2-3.신동방정책의 성과와 한계
3.결론
본문내용
1.서론-동서분단과 1960년대까지의 동방정책
1945년 4월 히틀러가 지하벙커에서 권총 자살하고 독일의 무조건 항복으로 유럽에서의 2차 세계대전은 끝났다. 그 후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연합국 4개국은 독일을 전범국으로 규정하고 뉘른베르크 재판을 열어 주요 전범들을 처벌하였으며 독일 영토의 4개국 분할 통치를 결의했다. 이들은 45년 2월 체결한 얄타 협정과 이행을 확인하는 7월의 포츠담 협정을 통해 독일을 4개 지역으로 나누어 통치하기로 결정하였고 이후 미국, 영국, 프랑스 점령지역은 독일연방공화국(이하 서독이라 함)으로 소련 점령지역은 독일민주공화국(이하 동독이라 함)으로 나누어진다. 이후 1949년 서독에서 아데나워가 총리로 집권(1949-1963)하면서 서방화와 경제재건 등 서독 내부에 중점을 둔 동방정책을 실시하였다. 이는 공식적으로는 독일문제 해결과 통일을 표방하였으나 본질적으로는 서방화와 제네바 합의를 수용하면서 분단을 고착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또한 동방정책의 추진에 있어서 서독의 우월성을 주장하고 동독을 고립시키고자 한 전략은 1960년대 미국의 지지를 받지 못하게 된다. 이렇게 그의 서방정책은 시기에 따라 변화를 겪어왔으며 이후 에르하르트가 총리에 오르면서(1963-1966 재임) 이전의 할슈타인 독트린을 계승하면서 공식적으로는 동유럽 국가와의 관계 개선을 추구하였으나 이들과의 외교관계 확립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에르하르트가 당내 권력싸움에서 밀려 사퇴하자 키징거가 총리에 올랐고(1966-1969 재임) 그가 속한 독일 기독민주당(이하 기민당이라 함)은 독일 사회민주당(이하 사민당이라 함)과 연정을 구성해 집권하게 되었고 동독과의 경직된 관계를 완화하고 동유럽 국가와의 관계 개선을 천명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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