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멜의 일대기를 통해 본 리더쉽
- 최초 등록일
- 2015.02.20
- 최종 저작일
- 20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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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들어가면서
2. 롬멜의 어린시절
3. 롬멜신화의 시작
4. 히틀러와의 만남
5. 마지노선을 무너뜨리다.
6. 롬멜신화 ‘사막의 여우’
7. 운명의 숙적 ‘몽고메리’
8. 마치면서
본문내용
2002년 한일월드컵이 열리던 해에 한창 히딩크 감독의 리더쉽이 화제가 된적이 있었다. 흔히들 히딩크 감독을 명장이라 칭한다. 명장 밑에 약졸 없다고 그러한 히딩크의 뛰어난 용병술과 전술이 우리나라를 한일월드컵의 4강에 들게 한 것임은 부인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기존의 우리나라 선수들이 아무리 뛰어난 기량을 갖추고 있었던들 번번히 월드컵이나 또는 해외무대에서 외국의 뛰어난 선수들과 겨뤄 번번히 패하였던 것을 보면 한일월드컵 때와 같은 히딩크의 리더쉽과 전술운용 등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새삼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중 략>
이른바 SA라고 불리우는 고슬라 나치 돌격대의 지휘관 에른스트 룀은 자신의 갈색 무리가 국가의 둘째가는 군대로 정비해야 함을 집요하게 주장했는데 이러한 주장은 국가 내에서 세력을 빼앗길까 노심초사하며 그들을 감시하던 제국군의 생각과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이었고 때마침 SA대원들이 반란을 계획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히틀러는 무려 85명의 SA지휘관과 반정부 인사들을 사형시키기에 이른다. 주둔군 사령관으로 고슬라에 있던 롬멜은 이 SA대원들과 끊임없는 갈등을 일으키던 차에 ‘룀-쿠데타’의 진압 사건을 지지하며 1934년 6월 30일 자신의 부대를 빠른 행군으로 다시 고슬라로 이끌며 그 “칼날의 밤”을 반겼다. 그는 “이번 기회에 완전히 모든 폭도들을 청산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룀-쿠데타’ 사건은 롬멜이 히틀러와 가까워지고 국가사회주의자가 되는 계기가 된다.
<중 략>
55세의 영국인 몽고메리는 롬멜처럼 하나의 전설적인 인물이 되었다. 그러나 몽고메리는 롬멜에 버금가는 카리스마나 전술 능력을 갖춘 인물은 아니었다. 오히려 날로 증가되는 영국군의 병력과 물자 보급 능력으로 이득을 보았다. 추후에 이룩한 롬멜에 대한 그의 승리는 그로 하여금 신화의 일부가 되도록 하였다. 특히, 그는 미국군의 투입이 있기 전 마지막으로 순수 영국군만의 결전을 승시로 이끈 장본인이었는데, 이것이 영국에서는 훨씬 더 큰 의미를 지녀 몽고메리를 전설적인 인물로 만들게 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