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입지와 공간구조, 대구의 도시변천사
- 최초 등록일
- 2015.03.13
- 최종 저작일
- 2014.10
- 8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할인쿠폰받기](/images/v4/document/ico_det_coupon.gif)
소개글
대구의 공간구조와 도시변천사
목차
1. 대구광역시
2. 대구시의 공간구조
3. 대구의 도시변천사
1) 조선시대 후기의 대구도심
2) 1900년대 이후 대구도심
3) 현재의 대구
본문내용
1. 대구광역시
- 위치 : 경상북도 남부 중앙
- 면적 : 884.46 ㎢
- 인구 : 약 25만 명
- 지형 : 분지
- 기후 : 대구분지처럼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지역은 분지기후를 나타낸다.
이 기후의 특징은 비구름의 통과가 어려워 비가 적고 건조하며, 여름은 무덥고 겨울은 추운 지역으로 기온의 연교차가 심하고 대구분지의 여름철은 도심부를 중심으로 동심원상의 기온분포를 보이는 열섬현상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2. 대구시의 공간구조
대구를 감싸고 있는 주변부의 산맥의
흐름과 그 외부와 용맥의 흐름을 살펴보면, 한반도의 정점인 백두산에서 태백산맥이 남쪽으로 쭉 뻗어 내려오다가 서쪽으로 방향을 돌려 가지산과 운문산을 거쳐 팔조령(八助嶺) - 최정산(最頂山) - 비슬산(琵瑟山) - 성불산(成佛山)에서 북쪽으로 뻗어 중구 대봉동의 수도산을 지나 지금의 제일여자중학교 자리에 있는 진산인 연귀산(連龜山)에 이어졌고, 다시 아미산(蛾眉山)을 거쳐 영남제일관을 통해 현재의 중구 포정동에 이어져 경상도의 행정중심인 경상감영(경상도감사가 직무를 보는 관아)의 터가 되었다.
그 후 약400년이 지난 대구의 중심인 관기(官衙)인 감영의 자리가 조선시대 대구읍치의 읍기로 고장의 명당이어서 약 400년 전에 경상감영이 이곳에 옮겨왔다. 그 후 이곳이 영남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부가 되었다.
대구의 풍수적인 사고의 해석으로는 읍지에서 진산(連龜山)과 성불산(成佛山),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서 한반도의 지맥의 흐름도 비보적인 사고로는 진산에 거북이의 머리를 남쪽으로 꼬리를 북쪽으로 향하게 하여 지맥을 읍지에 이르도록 배치한 것 이외는 특별한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3. 대구의 도시 변천사
1) 조선시대 후기의 대구도심
조선시대 각지의 고을의 모습을 살펴보면, 우선 고을의 북측에는 읍의 진산이 위치하고 읍을 둘러싼 성이 있었으며 거기에는 반드시 루(樓 : 주위의 동정을 살피기 위하여 높이 지은 다락집)가 딸려있었다. 그리고 읍성 내에는 지붕 끝이 하늘로 젖혀 올라간 기와집이 있었는데 그 사이에 아주 높다랗게 치솟은 지방행정을 관할하는 관청과 사신의 숙소로 사용하였던 객사가 있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