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을 찾아서, 영조와 계비 정순왕후 원릉
- 최초 등록일
- 2015.04.04
- 최종 저작일
- 20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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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세계문화유산인 조선왕릉 중에서 영조와 계비 정순왕후 원릉에 대한 재미있고 유익한 스토리입니다.
목차
숙종 이후의 붕당정치는 영조의 탕평책으로 말미암아 커다란 분기점을 맞는다. 숙종 대에 남인을 몰아낸 경신환국 이후 남인의 죄를 다스리는 문제를 놓고 서인이 또 분열했는데, 남인을 강력하게 처벌하자는 강경파 노론과 이에 반대하는 소론으로 갈라졌다. 숙종이 세상을 떠나고 영조는 탕평책으로 노론과 소론을 고르게 등용했으며 이후 노론, 소론, 남인, 소북파 등 다양한 인재를 등용해 정치를 안정시켰다. 영조의 뒤를 이은 정조도 탕평책과 개혁정치로 붕당정치의 종식을 위해 힘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조와 정조 대에도 여러 붕당이 형성되어 문제를 야기했던 사건은 있었다. 정조 이후 순조의 장인 김조순을 시작으로 안동 김씨가 정권을 잡는 세도정치가 들어서면서 250년 이어온 사림의 붕당정치는 끝을 맺게 되었다.
본문내용
숙종 이후의 붕당정치는 영조의 탕평책으로 말미암아 커다란 분기점을 맞는다. 숙종 대에 남인을 몰아낸 경신환국 이후 남인의 죄를 다스리는 문제를 놓고 서인이 또 분열했는데, 남인을 강력하게 처벌하자는 강경파 노론과 이에 반대하는 소론으로 갈라졌다. 숙종이 세상을 떠나고 영조는 탕평책으로 노론과 소론을 고르게 등용했으며 이후 노론, 소론, 남인, 소북파 등 다양한 인재를 등용해 정치를 안정시켰다. 영조의 뒤를 이은 정조도 탕평책과 개혁정치로 붕당정치의 종식을 위해 힘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조와 정조 대에도 여러 붕당이 형성되어 문제를 야기했던 사건은 있었다. 정조 이후 순조의 장인 김조순을 시작으로 안동 김씨가 정권을 잡는 세도정치가 들어서면서 250년 이어온 사림의 붕당정치는 끝을 맺게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