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학의 수용과 전개
- 최초 등록일
- 2015.04.08
- 최종 저작일
- 20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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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여말선초의 사상계의 동향
2. 개혁세대가 성리학을 선택한 이유
3. 정도전
4. 권근
본문내용
1. 여말선초의 사상계의 동향
① 1392년 : 400여 년 역사의 고려 왕조가 무너지고 조선 왕조가 세워짐!
-> 고려 왕조가 지지하던 불교X, 성리학 등장!! (불교에서 성리학으로의 전환)
-> 하나의 사상이 다른 사상으로 전환되는 배경에는 역사 변화가 있다.
그래서 사상의 변화를 검토할 때에는 반드시 역사 조건의 변화도 살펴봐야 한다.
② 고려 말 : 왕권이 약해짐
-> 사회,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많은 문제 발생!
그 중 가장 심각한 문제는 대토지 소유자들의 증가로 나라 살림 빈약해짐.
# 대토지 소유자들이 증가 했다는 것이 왜 문제였을까?
- 자영농 : 왕실이 가진 땅을 농민에게 나눠주고, 수확의 10% 가량을 토지세로 가져감.
농민에게 빌려준 땅은 토지 장부에 기록, 농민은 그 땅에서 농사지을 권리 가짐.
- 지주 : 농민이 아니지만 땅을 가짐. 벼슬아치, 전쟁에서 공을 세워 나라 땅을 가진 사람.
- 소작농 : 농민이면서도 땅이 없음. 지주에게 땅을 빌려 농사를 지었음.
지주는 소작농에게 땅을 빌려 준 대가로 나라에 낼 세금보다 훨씬 많은 양의 소작료 요구.
- 고려는 농업 국가였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이 나라 살림의 원천이었다.
- 땅이 큰 이익을 보장해 줬기 때문에, 권세 있는 사람들이 모두 땅을 많이 확보하려고 함!
- 개인의 땅이 많아지면 나라가 가진 땅이 줄어들음.
- 고려 말의 왕실은 약했고, 권세를 지닌 사람들이 많은 땅을 확보하기 위해 기승을 부렸다.
- 토지 장부 조작하거나 농민에게 높은 이자로 돈을 빌려주고 갚지 못하면 땅을 빼앗고, 노비들을 시켜 황무지를 개간한 뒤 토지 장부에 올리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 따라서 나라는 어려워졌고, 고려 말은 혼란스러운 상황이 되었다!!!
③ 고려 말 : 이민족의 잦은 침입으로 전쟁 多
-> 비상 대책으로 세금을 늘렸지만 권세 있는 사람들은 정상적인 세금조차 잘 안냄.
세금의 대부분을 자영농이나 소작농이 감당해야 했다.
-> 결국 사람들은 농촌을 버리고 떠났고, 농촌에는 주인 잃은 땅이 늘어나고 나라 경제는 더욱더 어려워졌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