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서론
2. 유수원과 그의 시대
3. 조선과 유수원의 경제관
1) 조선의 경제관
2) 유수원의 경제관
4. 상업 진흥 방안
1) 사회적 분업의 확대와 양반의 상업 종사
2) 무허가 상인의 축출
3) 대상인, 소상인, 노동자의 동업
4) 액점 설치와 특권 상인 육성
5) 화폐 정책의 개선
5. 유수원 실학의 정체성
1) 중국을 배우는 자세
2) 명분론적 주자학 비판 – 실학적 주자학 지지
3) 사상의 계보
6. 결론
7.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서론
농암 유수원(聾庵 柳壽垣, 1694~1755)은 상공업에 중심을 둔 이용후생(利用厚生) 사상의 필요성을 주장한 학자였다. 유수원이 살았던 17, 18세기의 조선은 각종 정치, 경제, 사회 제도가 본래의 취지를 벗어나 제도 내에 처음부터 내재하고 있던 모순들이 터져 나오던 시기였다. 이에 사회의 기강은 해체되고 경제는 위축되었으며 국가재정은 파탄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에 처해 조정과 재야에서 제기된 대책들은 기존의 유교적 개념체계 내의 것이었다. 즉, 정심성의(正心誠意), 수기치인(修己治人)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 전반의 변화와 맞물리며, 사상계의 변화 또한 동시에 일어났다. 주자학이 지배이념으로서의 그 역할과 기능을 확대하는 과정 속에서, 주자학과는 성격을 달리하는 주자학을 이탈한 새로운 사유와 학문론이 대두·발달하였다. 주자학의 학문론으로는 대처하거나 타개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변화와 문제가 생겼으므로, 이를 대체할 사유체계가 적극 모색된 것이었다. 이른바 실학(實學)의 대두였다. 이를 중심으로 하는 사상가들은 대체로 고대 이상사회의 제도에 관한 기록인 『주례(周禮)』를 재해석하는 형식을 통해 조선의 제도를 비판하고 대책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빙자일 뿐 새로운 관점이 작용한 것이었다. 실학자들은 경세치용, 이용후생 등의 학문 태도를 강조하며 성리학의 부조리함을 비판하고 당시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다.
유수원은 18세기 사회의 총체적인 문제점으로 국가의 재정 부족을 지적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상공업에 중심을 둔 이용후생 사상이 필요함을 역설하였다. 유수원의 사상은 그의 저술인 《우서(迂書)》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는 그의 나이 40세를 전후한 시절인 1729~1737년(영조 5~13)에 걸쳐 《우서》를 저술하였다. 《우서》에 서술된 개혁론은 자신의 불우한 정치현실과 이 시기 지방관 생활을 통해 직시할 수 있었던 조선 후기의 사회 경제적 실상에 대한 깊은 고민의 복합적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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