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상섭 발표자료
- 최초 등록일
- 2015.05.25
- 최종 저작일
- 20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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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작가의 생애
2. 염상섭 소설의 특징
1) 폐허적 현실인식
2) 사실주의적 문체, 핍진성.
3) 개인의 발견, 자기확인
3. 「윤전기」 (1925)
1) 줄거리 요약
2) 작품 분석
본문내용
1. 작가의 생애
본명은 염상섭(廉想涉). 호는 횡보(橫步). 염상섭은 1897년 8월 30일 서울 종로구 필운동 야조현 중턱쯤 되는 속칭 ‘고가나무골’에서 일찍부터 문명개화의 세례를 받은 염금환의 6남2녀 중 셋째아들로 태어난다. 그의 아버지는 전주·가평·의성 등지에서 군수를 지낸 인물로, 염상섭은 꽤 넉넉한 집안에서 유복하게 자란다. 그럼에도 염상섭은 어릴 적부터 문학을 일제강점이라는 절망적 상황에서 벗어나게 도와주는 유일한 광명과 희망의 출구로 인식하게 된다.
열다섯 살 때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그는 아오야마학원을 중퇴하고 교토 부립 다이이치중학교를 졸업하고서 1917년 게이오대학 문과에 다니지만 이마저도 중퇴한다. 1920년 2월 『동앙일보』 창간과 함께 진학문(秦學文)의 추천으로 정경부 기자로 활동하였다 1920년 7월 김억(金億)‧김찬영(金瓚永)‧민태원(閔泰瑗)‧남궁벽(南宮璧)‧오상순(吳相淳)‧황석우(黃錫禹) 등과 함께 동인지 『폐허』를 창간하고, 김환(金煥)의 「자연의 자각」에 대한 평가를 둘러싸고 김동인(金東仁)과 논쟁을 벌였다. 1921년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발표하며 소설가로 등단한 이후 「암야」, 「제야」 등을 발표했다. 1922년에는 《신생활》 7·8월호에 그동안의 소설 세계에서 한 걸음 사회적 자아를 찾아 나아간 중편 「만세전」을 연재하게 된다. 같은 해 『폐허 이후』를 발간함과 아울러 『해바라기』를 출간하였다. 1924년 《개벽》 2월호에 「금반지」를 발표하고 이듬해 「전화」, 「윤전기」, 「조그만 일」, 「밥」 등을 발표한다. 1927년 그는 《조선문단》에 「문예와 생활」를, 《시대평론》에 「두 출발」을 발표하고 <동아일보>에 장편 「사랑과 죄」을, 1928년 <매일신보>에 장편 「이심(二心)」을 연재한다.
1929년 서른두 살 노총각으로 열여덟 나이의 여성과 결혼한 염상섭은 1930년 <조선일보> 학예부장을 맡아 주로 응모 작품의 심사와 독자 투고 원고의 선별을 맡게 되며 창작 소설로는「광분(狂奔)」을 발표한다. 1931년 1월, 그는 <조선일보>에 한국 문학사에서 사실주의 소설의 대표작으로 거론되는 장편 「삼대」를 연재한다.
참고 자료
장석주, 나는 문학이다, 나무이야기, 2009.9.9
김윤식, 『속 한국 근대 작가 논고』, 일지사, 1981
염상섭, 「만세전」, <시대일보>(1924)
조연현, 「문학계의 1년」, 『신천지』, 1950.1, p.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