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중음악사 1968년부터 1975년을 조사분석
- 최초 등록일
- 2015.06.20
- 최종 저작일
- 20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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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대중음악의 1968년부터 1974년의 역사를 당시를 대표했던 가수를 중심으로 썼습니다.
레포트로 시험을 대체하는 수업이였는데 A+자료입니다.
목차
1. 서론
2. 본론
1) 신중현 사단의 등장
2) 김홍탁
3) 한대수
4) 송창식
5) 김민기
6) 양희은
7) 방의경
8) 이장희
9) 남진, 나훈아
10) 이정선
3. 결론
본문내용
1. 서론
1970년대 초반 청년세대의 문화적 정체성을 대변했던 일련의 문화현상을 ‘청년문화’라고 한다. 청년문화라는 용어는 1973~1974년 무렵부터 쓰이기 시작했지만 그 현상은 1960년대 후반부터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통기타 포크송이라는 현상에 국한해서 보면 트윈폴리오가 활동을 시작했던 1968년 무렵을 기점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시기 이후 1970년대 초반의 빠른 성장기를 거쳐 정치적 외압에 의해 사실상 강제로 퇴출되는 197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가 청년문화의 시기였다고 볼 수 있다. 이 시기는 5.16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군사정권이 급속한 경제성장 정책과 함께 개발독재의 성격을 강화하고 장기집권의 길로 나아가고 있던 정치적,사회적 격변기였다. 특히 1960년대 초부터 강력하게 추진된 경제성장과 함께 사회적 모순이 격화되고 민중의 저항이 터져나오며 사회적 갈등이 고조되던 시기라 할 수 있다. 3선개헌과 전태일의 분신, 광주대단지 사건, 오적 필화사건, 유신체제의 등장, 위수령과 민청학련사건, 긴급조치 등은 이 시대의 갈등과 격변을 웅변하는 사건들이다. 청년문화는 바로 그렇게 사회적 갈등이 고조되던 시기에 등장했고, 따라서 어떤식으로든 사회정치적 변화와 갈등의 맥락을 벗어날 수 없었다.
주로 외국 음악의 번안으로 시작 되었던 당시의 음악은 개성적인 싱어송 라이터들의 등장과 함께 폭 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 그 속에는 정치적인 저항의 메시지를 담은 모던포크부터 낭만적인 팝 성향의 음악까지 다양한 음악적 경향이 존재했다. 하지만 당대의 사회적 질서와 상당한 길항관계를 형성했고 정치권력에 의해 매우 직접적인 통제와 억압을 받아야 했으며 결국 시장에서 사실상 강제로 퇴출되어야 했다. 지금부터 청년 문화를 상징하는 1968년부터 1975년까지의 한국 대중음악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참고 자료
김창남, 1970년대 한국 청년문화의 문화적 정체성
대중음악과 문화 (2012. 이에스더. 계명대학교 출판부)
가요 케이팝 그리고 그 너머 (2013. 신현준. 돌베개)
K-POP 세계를 홀리다(2012, 김학선, 을유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