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 역사편찬과 사절파견을 통해서 본 조선 왕실의 여진족·대마도 인식
- 최초 등록일
- 2015.06.20
- 최종 저작일
- 2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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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 초기 역사편찬과 사절파견을 통해서 본 조선 왕실의 여진족·대마도 인식에 관한 레포트
목차
1. 머리말
2. 조선 왕실의 기원을 통한 여진족과의 관계
3. 여말선초 태조 이성계와 여진족·대마도 왜구
(1) 여진족과 태조 이성계
(2) 대마도 왜구와 태조 이성계
4. 대마도·여진에 파견한 경차관 관행
5. 조선 왕실의 여진·대마도 왜구에 대한 인식과 고려사, 용비어천가의 이용
(1) 태조 이성계와 조선 초기 역사서 편찬
(2) 여진·대마도에 대한 번리·번병 인식의 보편화
6. 맺음말
본문내용
1. 머리말
지금까지 조선 왕조와 여진족·대마도 왜구의 관계는 단순히 교린의 개념에서 이해되어왔다. 즉 당시 명 중심의 동아시아 질서 아래에서 비교적 동등한 친선관계를 맺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선 초기 제작된 역사서들과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몇몇 사료들을 살펴보면, 조선은 여진족·대마도 왜구에 대해 교린 이상의 영향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용비어천가, 고려사를 통한 조선 초기 역사편찬은 그동안 단지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조선의 태조인 이성계의 고려 말 활약부터 조선이라는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하여, 조선 건국을 합리화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료를 보면 단순히 조선 건국의 정당성이 드러나는 것뿐만이 아니라 이성계의 활약상이 주로 여진족과 대마도 왜구에 집중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사료를 살펴보면 조선 초기 여진과 대마도에, 중앙에서 국왕의 사명을 받아 파견되는 관리인인 경차관이 파견 정다함, <조선 초기 야인과 대마도에 대한 번리·번병 인식의 형성과 경차관의 파견>, 동방학지 141, 2008, pp221-266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조선 내에서 왕명을 받아 수시로 중앙에서 지방으로 파견되던 관원이 조선의 국경을 넘어 여진과 대마도 왜구에게도 파견된 것이다.
이와 같이 조선 초기 편찬된 역사서에 태조 이성계의 활약이 여진족과 대마도에 집중되어 나타났으며, 왕명을 받들어 전하던 경차관을 여진이나 대마도에 파견한 것에 주목하여 조선과 여진족·대마도 왜구와의 관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조선 왕실은 당시 여진족·대마도 왜구와의 관계를 어떻게 인식했는가? 또한 이성계의 활약을 강조하는 용비어천가와 고려사의 편찬을 여진족·대마도 왜구와의 관계를 정의 하는데 어떻게 이용했는가?
이러한 의문들에 해답을 찾기 위해 크게 두 가지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조선 초기 편찬된 역사서 속에 여진과 대마도를 대상으로 한 이성계의 활약상을 살펴보고 조선 왕실이 여진과 대마도에 가졌던 대외관이 당시 이러한 역사서들을 어떻게 이용했는지 분석할 것이다.
참고 자료
유창규,「이성계의 군사적 기반」,『진단학보』58, 1984, 1-16
정다함,「조선 초기 야인과 대마도에 대한 번리·번병 인식의 형성과 경차관의 파견」, 동방학지141, 2008, 221-266
정두희,「조선전국사 자료로서의 용비어천가」,『진단학보』68, 1989, 79-84
정두희,「용비어천가의 편찬과 고려사」,『진단학보』68, 1989, 155-1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