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당전쟁 - 신하의 나라가 주인의 나라를 이긴 전쟁
- 최초 등록일
- 2015.07.01
- 최종 저작일
- 2012.09
- 6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할인쿠폰받기](/images/v4/document/ico_det_coupon.gif)
소개글
한국고대사 수업에서 작성한 나당전쟁 대한 리포트입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본론
1. 신라의 승리요인
1) 정치적· 외교적요인
2) 군사적요인
3) 지리적요인
2. 당의 국내외 정세상황
1) 국내정세
2) 국외정세
Ⅲ. 맺음말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고구려가 동북아시아의 강국으로 등장하자 주로 중국의 한족과 패권을 다투는 전쟁을 벌이게 된다. 한반도의 동남부에서 주로 고구려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한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의 압력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대당 외교를 강화하자 이를 계기로 하여 새로운 대립 정국이 형성되었다. 즉 신라와 당이 동서로 연합하고 백제와 고구려가 남북으로 연합하여 동서세력과 남북세력으로 대결하는 구도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급기야 신라는 당과 연합군을 편성하였고 660년 7월에는 백제를 멸망시켰다. 이어 668년 9월에는 수도 평양성을 함락함으로써 고구려 왕조마저 멸망시켰다. 당나라는 고구려를 멸망시킨 뒤 백제땅에 웅진도독부를, 평양에는 안동도호부를 설치하고, 신라에는 계림도독부를 두어 한반도와 만주 전체를 지배하려고 했다.즉 당은 백제와 고구려의 영토는 물론 본래 신라가 가지고 있던 고유 영토마저도 송두리째 지배하려는 야욕을 노출시켰다. 이에 신라가 당이 한민족을 지배하려는 저의를 무력으로 분쇄하기 위해 당군과의 충돌도 불사함으로써 나당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즉 고구려를 멸망시킨 후 당의 출병부대를 그대로 잔류시켜 한민족 모두를 그들의 지배하에 두려는 야욕을 신라가 무력으로 압박하여 몰아낸 과정이 나당전쟁이었다.이 과정에서 신라는 민족의 자존을 확보하기 위해 다시 한 번 국력을 집중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적대 관계에 있었던 고구려 부흥군과의 제휴도 마다하지 않았다. 신라는 특히 매소성 전투(674)나 기벌포 전투(676) 등과 같은 중요한 전투에서 크게 승리하여 당군에 심대한 타격을 가함으로써 군사적인 압박을 가중시켰다. 10여 년 간 이민족의 지배 정책에 대항하는 민족적 차원의 대당 전쟁을 꾸준히 전개한 결과로 당군을 북으로 밀어내는데 성공하였고, 신라는 백제의 전토와 고구려의 일부를 새로운 영토로 편입시키게 되었다. 즉 서쪽의 대동강에서 동해의 원산만에 이르는 선의이남 지역을 영토로 확보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나당전쟁을 바탕으로 신하의 나라였던 신라가 주인의 나라인 당을 상대로 어떻게 이길 수 있었는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참고 자료
『三國史記』『三國遺事』『구당서』『자치통감』
국방군사연구청,『 羅唐戰爭史 』.1999.
황원갑 『 전쟁으로 읽는 한국사』, 도서출판바움, 2011.
송영만, 「매소성전투의 비밀」, 『KBS 역사스페셜』, 효영출판 2003
서영교, 『나당전쟁사 연구 』, 아세이 문화사, 2006
서영교.「나당전쟁사 연구: 국제정세의 변화와 나당전쟁의 추이」
서영교, 「新羅長槍幢에 대한 新考察」
서영교, 「 羅唐戰爭의_開始와_그_背景」
이상훈, 「羅唐戰爭期_文豆婁_秘法과_海戰」
閔德植, 「나·당전쟁에 대한 고찰-매소성 전투를 중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