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도시계획사 역사와 발전, 재생을 중심으로
- 최초 등록일
- 2015.08.19
- 최종 저작일
- 20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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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건설과 초기 이주민
2. 중세의 런던
3. 근대 시대의 런던
4. 런던의 발전
5. 도시 계획의 전개
6. 재개발 및 도심 재생
본문내용
1. 건설과 초기 이주민
(起源)은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브리타니아를 정복할 때에 지금의 런던 지역에는 켈트족들이 살고 있었다. 이 후, 로마인이 43년에 론디니움(Londinium)이라는 요새를 건설한 것이 그 시초이다. 200년대 초반에, 로마인들은 도시에 많은 벽을 세웠는 데 침입자들로부터 방어를 위해서였을 것이다. 410년에 민족 대이동이 시작되면서 로마군들이 본국으로 철수하였다. 실질적인 런던의 역사는 로마 점령기로부터 시작된다. 오늘날 런던 다리에서 콘힐에 이르는 그레이스처치가는 로마 점령 당시 런던 다리로부터 로마인들이 바실리카풍의 교회를 세웠던 론디니움의 중심부까지 뻗어 있었다. 로마인들이 이곳에 정착한 지 17년 후 부디카 여왕이 이끄는 이케니족(族)이 반란을 일으켜 이 지역을 약탈했다. 그들이 방화한 흔적을 따라가 보면, 당시에 이미 서쪽 월브룩을 지나 훗날 세인트폴 성당이 들어선 언덕까지 촌락이 형성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방화사건이 있은 이후에, 중앙통로 길이가 약 150m에 이르는 보다 큰규모의 바실리카풍 교회가 건설되었다. 도시를 방어할 목적으로 북서쪽 경계에 론디니움(Londinium) 요새가 지어졌으며, 성벽은 2세기말에 비로소 건설되었다. 이후 2세기 동안에도로마인들이 건설한 거리의 양식은 그대로 유지되었고, 410년에 민족 대이동이 시작되면서 로마군들이 본국으로 철수하였다.
<그 림>
2. 중세의 런던
게르만족의 부족인 색슨족, 앵글족, 유트족이 브리튼 섬의 동부를 공격하여, 결국 그곳에 정착하여 황국을 세운다. 그래서 런던은 새로운 도시로 번영하였다. 800년대에는 덴마크의 바이킹이 도시를 공격하였고, 후에 알프레드 대천황이 런던을 새로 설립하였다.1000년대에는 앵글로색슨의 대천황인 에드워드 참회왕이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세웠다.1066 프랑스의 귀족인 기욤 (후에 윌리엄 1세)이 영국을 통치하였고,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황위에 올랐다. 윌리엄 1세는 런던 시민들을 자치 정부로 승인하였다. 이 때 런던 성벽바깥 쪽에, 런던 탑에 딸린 위협적 아성으로 노르만 양식의 화이트타워를 세웠다. 화이트타워는 높이 27m 가량의 4각형꼴(가로 35m, 세로 32m 가량) 건축물이다. 성벽의 바닥 두께는 약 4.5m이고, 꼭대기 두께는 약 3.3m로, 각 모서리마다 탑들이 서 있다.
참고 자료
도시공간 계획사, 기문당 ,김철수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do?docid=b06r0247b012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ta2sin21&logNo=110022733717&parentCategory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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