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본론
Ⅱ-1. 이육사의 생애
Ⅱ-2. 투사로서의 이육사 - 「교목」과 「광야」와 「절정」을 중심으로
Ⅱ-3. 저항적 모습 이면의 이육사 - 「노정기」와 「소년에게」와「만등 동산」을 중심으로
Ⅱ-4. 이육사의 문학사적 의의
Ⅲ.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살다보면 크고 작은 문제들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리고 이 여러 문제들 속에서 우리는 방황하기도 하며 흔들리기도 한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하나의 밀알 같은 문제이더라도 그 밀알 앞에선 스스로가 하염없이 작아지기도 한다. 그럴 때에 떠오르는 이 시 구절은 순간 나를 되돌아보게 한다.
지금 눈 나리고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광야」中 -
절박한 상황 앞에서도 흔들림이 없는 이육사의 의지는 미풍에도 흔들리며 문제 앞에서 우짖는 나를 반성하게 만든다. 이것은 아마 윤동주가 한용운과 이육사의 전적들을 보아가며 느꼈던 부끄러움과 같은 부류의 감정이 아닐까 싶다. 물론 윤동주와 감히 비교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이육사의 강철 같은 의지와 행동은 보는 이로 하여금 부끄러움을 자조하게 만든다.
30년대 일제 식민지시기에 민족적 투쟁 활동을 활발히 하던 이육사는 우리에게 저항시인으로 굳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너무나도 재단적인 평가에 아쉬움을 토로하는 연구자들도 많이 있지만, 그의 저항적 모습은 평가 제외될 수 없는 가치 높은 행동이다. 하지만 나 역시도 투쟁적이고 저항적으로만 주 평가된 그의 모습에 아쉬움을 느꼈다. 물론 그의 굳센 투사적 모습은 상당히 존경스럽지만, 이번 기회를 통하여 그의 다른 면모도 살펴보고자 하였다. 우선, 본론에서는 그의 생애를 전반적으로 살펴보고, 그의 작품 「교목」과 「광야」와 「절정」을 중심으로 투사적인 이육사의 모습을 다루어보고자 한다. 그리고 「소년에게」와 「청포도」와「만등 동산」을 중심으로 저항적인 요소 외의 이육사를 살펴보겠다. 마지막으로 그의 문학사적 의의를 제시해보고, 정리하며 마무리 짓겠다.
Ⅱ. 본론
Ⅱ-1. 이육사의 생애
이육사는 1904년 음력 4월 4일 경상북도 안동군 도산면 원촌리 881번지에서 태어났다. 퇴계 이황의 14세손으로 아은공(亞隱公) 이가호(李家鎬)와 김해 허씨 범상공(凡山公) 허형(許衡)의 딸 허길(許佶) 사이에서 6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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