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쇄원 답사기(한국의 문화유산 답사 과제)
- 최초 등록일
- 2015.10.28
- 최종 저작일
- 20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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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제가 직접 소쇄원에 다녀와서 찍은 사진들이 많이 첨부되어 있어서 레포트 쓰시는데 도움 많이 되실 거에요~~
소쇄원의 기원과 그것이 가지는 의미, 소쇄원의 각 공간들, 풍경들에 대한 묘사와 분석, 제가 직접 보고 느낀 점 등이 담긴 답사기 입니다! A+ 받은 레포트에요~^^
목차
1. 소쇄원으로 향하는 길
1) 전라남도 광주표 모밀(메밀)국수
2. 소쇄원 들어서는 길
1) 대나무 숲
2) 소쇄원의 역사와 그곳에 담긴 의미
3. 소쇄원 담장을 따라
1) 대봉대
2) 애양단
4. 물길 위에서
1) 오곡문
2) 외나무 다리와 살구나무
5. 물길을 건너
① 제월당
1) 모습과 느낌
2) 제월당 뒤뜰의 나무들
② 광풍각
1) 모습과 느낌
2) 제월당에서 광풍각으로 통하는 문
참고문헌
본문내용
- 소쇄원의 역사와 그곳에 담긴 의미
소쇄원을 만든 사람은 양산보라는 사람으로 그것의 이름은 주인 양산보의 호인 ‘맑고 깨끗함’이라는 뜻을 지닌 ‘소쇄옹’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1503년에 태어나 1557년생을 마감한 이로, 15살에 정암 조광조의 문하에서 수학하는데 스승이 바른 정치를 구현하다 1519년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화순 능주에서 귀양을 살다 사약을 받고 죽게 되자 17살에 고향으로 돌아와 평생 세상에 나가지 않고 은둔, 처사의 길을 걸었던 사람이다.
이는 선비가 불행하게도 때를 만나지 못하면 도를 마음에 담아둘 뿐 펼치지 못하며 교화는 자신의 집안으로만 그치고 넓혀지지 못한다는 옛적의 말을 볼 때 그로 인해 양산보는 선비의 큰 뜻을 펴지 못하였으나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학문에 힘쓰며, 지역의 선비와 교류하고 나무와 화초를 가꾸고 원림을 조성하며 바른 삶을 살아간 선비의 본보기가 되었던 사람이었고,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 한국 민간 정원인 소쇄원이다.
양산보의 생애 크게 세 가지로 구분 지을 수 있는데 양산보의 생애를 통해 소쇄원의 역사를 알 수 있다. 1517년 이전까지의 성장기와 1517년부터 1519년까지의 수학기, 그리고 1519년부터 생애를 마감할 때까지의 낙향 은일기로 쉽게 나누어 볼 수 있는데 그중 은일기인 20대에는 이미 소쇄원에 대한 일단의 공사를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30대에는 면앙정 송순, 하서 김인후, 석천 임억령 등과의 학문적 교류와 더불어 구체적인 소쇄원의 조영에 들어갔으며, 40대 초반에 완결을 지은 것으로 보인다. 40대 중반에는 벼슬길에 천거를 받았지만 나아가지 않고 은일하며 부친에 대한 효성을 다하면서 소쇄원 안에서 많은 학자들과 모여 학문 토론과 창작활동을 벌이면서 학문에 힘쓰다 50대에는 생을 마감하게 되었던 것이다.
참고 자료
유홍준(1993),『나의 한국문화유산답사기』(창작과비평사)
www.soswaewon.org (소쇄원 홈페이지)
www.naver.com (백과사전)
김덕진(2007),『소쇄원 사람들 : 소쇄원을 통해 본 16∼17세기 호남의 역사』(서울 : 다할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