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군인정치시대와 고려 무신정권기 비교
- 최초 등록일
- 2015.11.23
- 최종 저작일
- 2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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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본론
Ⅱ-1 로마의 군인정치기
1)마리우스
2)술라
3)폼페이우스
4)크라수스
5)카이사르
Ⅱ-2 고려의 무신 정권기
1)고려 무신정권의 배경
2)이의방
3)정중부
4)경대승
5)이의민
6)최씨 무신정권
Ⅱ-3 로마와 고려 비교
Ⅲ. 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서양에서도 동양의 한국, 일본, 중국과 같이 ‘무인시대’는 존재하였지만 원래 서양에서는 중앙집권국가가 드물었으며 대다수의 시기에는 봉건국가들이 들어섬으로써 고려의 무신정권 때보다는 후삼국시대와 더 유사했다고 할 수 있다. 서양에서 중요한 중앙집권국가를 찾는다면 다름 아닌 로마를 들 수 있는데 로마 역시 고려와 같이 ‘무인시대’ 동안에 체제의 모순과 변화, 내란과 외침 등의 모든 문제를 겪게 된다. 따라서 지금부터 로마와 고려의 무인정치기를 비교해 보고자 한다.
Ⅱ. 본론
Ⅱ-1 로마의 군인정치기
1)마리우스
이탈리아의 지방도시 알피눔의 농민 출신이며 율리우스 가문의 딸과 결혼하였다. 그의 아내가 카이사르의 고모이다. 군인으로서 두각을 나타내었고 7차례나 집정관을 지냈다. 더욱이 BC 107년에는 누미디아의 유구르타에 대한 군 지휘권을 획득하였고, 부관 루키우스 술라의 조력에 의해 유구르타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 뒤 게르만의 킴블리 테우토니인의 이탈리아 침입을 막았다. 그 동안에 시민군단제도에서 직업군인제도로 개혁을 단행하였고 로마시민이면 누구나 로마군이 될 수 있었다.
BC 88년에는 폰투스의 왕 미트리다테스와 전쟁이 일어나자 군 지휘권을 둘러싸고 술라와의 경쟁에서 밀렸지만 술라가 총사령관으로 전쟁에 나간 사이 로마에 남아 자신의 정치력을 회복하는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다시 술라의 반격을 받고 아프리카로 도피했는데, 술라가 미트리다테스와의 전쟁에 출진 중인 틈을 타 이탈리아로 돌아와, BC 87년에 로마에서 술라 파에 대한 대학살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다음해 술라가 동방에서 돌아오기 직전에 병사하였다.
2)술라
하급귀족의 집안에 태어나 BC 107년 마리우스의 부장으로, 아프리카 누미디아의 왕 유구르타와의 전쟁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유구르타를 사로잡음으로써 전쟁을 종결시켰다. BC 104∼BC 101년 킴브리 등 게르만족의 침입을 맞아 마리우스의 막하에서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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