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와 당의 관계 : 나당전쟁을 중심으로
- 최초 등록일
- 2015.11.24
- 최종 저작일
- 20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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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 고대사 수업에서 중간과제이자 발표문이었던 자료의 원본입니다.
이 수업에서 저는 A0 를 받았지만 이것은 제가 출석률이 좋지 못해 성적이 내려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나당전쟁의 개시와 배경
1. 나당연합군의 백제 침공
2. 토번의 토욕혼(토곡혼) 흡수
3. 고구려의 멸망과 영토 처리 문제
4. 백제와 고구려 유민의 부흥운동
III. 나당전쟁의 발발과 종료
1. 신라의 대당전쟁 준비
2. 신라의 요동 선제공격
3. 신라의 백제지역 공격
4. 석문 전투
5. 칠중성, 천성 전투와 매소성 전투
5. 기벌포 전투
IV. 맺음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589년 중국 남북조를 통합한 수왕조를 이어 등장한 당 왕조는 고구려에게 다시 도전하였고,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의 위협을 극복하기 위하여 친당외교를 전개하였다. 이로써 나당동맹을 통한 삼국통일전쟁으로 확산되었다. 백제와 고구려의 멸망 이후 당은 신라마저 병합하고자 하여 나당전쟁으로, 나아가 동아시아를 장악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정세 속에서 신라가 어떻게 대당 전쟁준비를 하였고, 어떠한 전투를 치렀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Ⅱ. 나당전쟁의 개시와 배경
1. 나당연합군의 백제 침공
나당 연합군은 660년 백제를 협공했다. 당나라의 입장에서는 고구려를 정면에서 공격하는 방법보다는 후방의 신라와 손을 잡고 백제를 정벌 한 후에 고구려를 남북에서 친다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신라는 탄현을 넘어 황산벌로 진격했으며, 당군은 해로로 백제에 접근하여 금강을 거슬러 사비성 근처에 상륙했다. 백제를 동서로 공격하는 이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660년 7월 9일에 시작된 전쟁은 4일 후 웅진성으로 도망했던 의자왕이 항복함으로써 왕을 비롯하여 백제의 최상층 관료들은 당의 포로가 되었고 결국 전쟁은 끝을 내렸다.
2. 토번의 토욕혼(토곡혼) 흡수
토욕혼은 지금의 청해 및 신강남부지역을 차지하고 있어 북위 때부터 실크로드의 주요 통로를 장악하고 있었다.
당은 이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서 토욕혼을 공략해야 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634년 당 태종이 토욕혼왕에게 입조를 요구했으나 거절당하자 당 종실 공주와 토욕혼 왕자와의 혼약을 취소한다. 이에 따라 토욕혼 내의 반당성향이었던 인물들의 발언권이 커지기 시작한다. 또한 토욕혼의 왕이었던 복윤이 늙어감에 따라 권력이 주요 대신들의 손에 넘어가기에 이른다. 반당성향의 대신들에 의해 토욕혼은 당의 북서 국경을 침범한다. 당 태종이 이에 따라 634년 이정을 시켜 토욕혼에 대규모 정벌을 감행한다. 토욕혼은 대패하였고, 635년 토욕혼왕이 살해되기까지 한다. 이후 당 태종은 토욕혼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 소정방을 시켜 토욕혼을 지키게 하여 토욕혼은 명맥만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참고 자료
『三國史記』
『日本書紀』
서영교, 『나당전쟁사 연구 - 약자가 선택한 전쟁』아세아문화사, 2006년.
이상훈, 『나당전쟁기 기벌포 전투와 설인귀』
이상훈, 『羅唐戰爭의 軍事的 原因과 新羅의 戰爭準備』
이준성, 『羅·唐戰爭期 新羅의 軍事戰略 硏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