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경주선상지와 울산의 반구대 암각화에 답사를 다녀온 후 쓴 답사보고서
목차
Ⅰ. 서론
1. 경주 개관
2. 연구범위 및 방법
Ⅱ. 본론
1. 첫째 날
(1) 천전리
(2) 반구대 암각화
(3) 첫째 날 답사내용 정리
2. 둘째 날
(1) 불국사
(2) 하동, 마동
(3) 진티마을
(4) 경주선상지
(5) 황룡사지
(6) 천마총 (적석목곽분)
(7) 둘째 날 답사내용 정리
3. 셋째 날
(1) 감포 해안단구
Ⅲ.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서론
천년고도(千年古都)라는 말이 있다. 한자 그대로 풀이하자면 천년동안 있었던 옛 도읍이라는 뜻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경주를 수식하는 관용어구이다. 경주는 BC 1세기 건국하여, 7세기경 한반도를 통일하고, 935년 신라가 사라지기 전까지 천년동안 유지되었던 옛 도읍이다. 우리는 이번 2014년 10월 27일부터 29일까지 경주일대를 답사하였으며, 경주에 대한 자연지리적인 지식들과 인문지리적인 요건들이 어떻게 해당 지역의 자연환경의 영향을 받았는지를 배우게 되었다.
<중 략>
(3) 첫째 날 답사내용 정리
우선 천전리와 반구대 암각화가 있는 대곡리를 따라 흐르는 대곡천은 태화강의 상류로, 최후빙기 때 태화강은 하방침식활동으로 좁고 깊은 하곡을 형성시켰다. 이후 해수면이 100m까지 내려갔던 최후빙기가 끝이 나고 홀로세 초기에는 대륙빙상이 녹아 해수면이 급격히 상승하게 되었고 홀로세 동안 기후는 비교적 안정적이어서 최종빙기 말기 이후에 전 지구적인 온난화가 있었다.
이렇게 높아진 해수면의 영향으로 태화강 양안으로 자연제방이 입지하고 그 뒤로는 배후습지가 입지하게 되어 울산시가지는 태화강에 의해 북쪽의 구시가지와 남쪽의 신시가지로 구분되는데 구시가지의 일부와 신시가지는 홀로세에 형성된 충적평야 위에 입지하고 있다. 이는 홀로세 때 해면이 빠르게 상승한 후 태화강이 운반해 온 퇴적물이 쌓인 퇴적장이라 할 수 있다.
최종빙기에 형성된 태화강과 여천강의 침식곡은 후빙기 해진과 더불어 요곡 된 후 매적되어 현재는 충적평야 아래에 매몰되어 있다. 이는 울산충적평야의 퇴적상 횡 단면도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는데 최후빙기당시 하방침식으로 기반암이 깎인 하곡에 해빙기 당시 현재의 하구에서 16km 내륙에 위치하고 있는 굴하리까지 해수가 유입되어 30m부터 조개류가 나타나있다. 조개류가 섞인 모래가 하천퇴적물보다 먼저 퇴적된 이유는 하천이 하곡을 메우는 것은 일정한 속도지만 홀로세 시기 바다가 하곡을 메우는 것은 빠른 속도여서 퇴적물이 하곡을 메운 것이 아니라 바닷물이 먼저 하곡을 채우게 된 것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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