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역사] 엘리자베스 1세 이후 명예혁명까지 영국의 성장 분석
- 최초 등록일
- 2016.01.16
- 최종 저작일
- 20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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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영국의 성장에 대한 핵심이 잘 나와있습니다.
목차
1. 엘리자베스 1세
2. 대헌장 마그나카르타
3. 찰스 1세 : 명예혁명
4. 올리버 크롬웰
5. 제임스 2세
본문내용
1. 엘리자베스 1세
튜더 왕조의 마지막 군주인 엘리자베스 1세는 잉글랜드가 대영제국으로 발전할 수 있는 굳건한 토대를 마련했다. 그녀는 통일령을 선포하여 국교회가 주도하는 종교 질서를 확립하여 신교국가의 본격적인 기반을 마련하였다. 또한 일련의 입법을 통해 산업화와 가격혁명에 따른 부정적 결과들을 조절하려는 대응책을 추진했고, 잉글랜드 사회정책의 초석이 되는 구빈법을 제정했다. 엘리자베스 1세는 헨리 7세 때 처음 시도되었던 아메리카 식민지 개척도 재개하였다. 그녀는 가톨릭의 수호자인 에스파냐와의 대결에서 승리함으로써 개신교를 구하고, 잉글랜드가 대양으로 본격 진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치세 말기 특허를 주어 동인도 회사의 교역활동을 도왔다.
당시 드레이크는 투자자중 한명이었던 엘리자베스 1세와는 16만3천 파운드를 나눠가졌는데 이 금액은 당시 정부의 1년 지출과 맞먹는 수치였다. 고귀한 여왕은 친히 드레이크의 배위까지 올라갔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해적인 이 사람에게 정중하게 기사 작위를 부여했다. 동포의 성공과 여왕의 격려는 영국인들의 원양 항해에 대한 자신감을 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해외 약탈과 무역 행렬에 들어섰다. 새롭게 등장한 경쟁자들이 당시 최대 강국인 스페인을 눈에 띄게 약탈하면서 투쟁과 충돌이 계속 이어졌고, 결국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를 격노하게 만들었다.
참고 자료
마그나 카르타와 그 영향 1994년, Jennings Ivor 외 2 명 | 한국법학원
튜더 영국인과 마키아벨리즘 : 엘리자베스 1세를 중심으로 2008년, 김현란 | 한국서양사학회
올리버 크롬웰을 둘러싼 영국 의회의 논란, 1840년-1900년 2013년, 박지향 | 한국서양사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