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에 관한 레포트
- 최초 등록일
- 2016.05.02
- 최종 저작일
- 20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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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2. 체르노빌 원전 사고
3. 원전사고처리문제
4. 원전사고 대처과정에서의 피해
5. 방사능 누출
6. 자연에 대한 영향
7. 원전사고 후 국제사회 반응
본문내용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는 소비에트 연방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근교 프리피야트 근처에 있던 원자력 발전소이다. 발전소의 명칭은 사고 당시부터 포함해서, 착공 후 레닌 공산주의 기념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였다. 그러나 레닌과 연관이 있는 발전소는 아니었으며, 다만 레닌의 연설을 기념해서 이름이 붙여졌다. 발전소 간판은 사고 때문에 지금도 이 간판을 쓰고 있다. 로비 앞 광장에는 레닌의 동상이 있다. 발전소는 체르노빌 북서쪽 방향으로 18km, 우크라이나와 벨로루스의 국경으로부터 16km, 키예프 북쪽으로 대략 100km에 위치하고 있는 프리피야티에 있다. 발전소는 프리피야티 중심가로부터 동쪽으로 약 4km에 있으며, 냉각수 공급을 위한 인공 호수와 접하고 있다. 현재 우크라이나 정부는 '출입 제한 구역 및 강제 퇴거 구역'으로 지정했으며, 벨로루스 정부는 '국영 포레이시 방사선 환경 관리구'로 지정했다. 발전소 건설은 1970년대에 시작해, 1977년에 원자로 1호기가 준공한다. 1978년에는 원자로 2호기가 준공되었으며, 1981년에는 3호기가, 그리고 1983년에 4호기(사고가 난 문제의 원자로)가 준공한다. 게다가 각각 1GWe를 발전할 수 있는 5호기와 6호기가 사고 당시 건설중이었다. 발전 개념은 모두 RBMK-1000의 형태였다. 원자로 4개는 각각 1기가와트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었다. 열로 환산했을 때 이는 약 3.2기가와트가 되며, 이는 소련 원자력 발전량의 15%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헝가리로의 에너지 수출의 80%를 차지하고 있었다. 4호기는 우크라이나 전력의 대략 10%를 생산하고 있었다. 이 발전소를 포함한 체르노빌이나 프리피야티 등은 오직 원전을 위해 근무하는 근로자나 그 가족을 위해서 만들어진 도시였기 때문에, 당시 지도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기밀에 부쳐진 도시였다. 사고의 주된 원인은 아니지만, 원자로 건설 설계도에는 내열성의 건설 자재를 쓰라고 요구 하였지만, 실제로 건설될 때는 가연성의 재료를 사용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