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주거문화 변천사
- 최초 등록일
- 2016.05.07
- 최종 저작일
- 20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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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고려시대
2. 조선시대
3. 19세기말 개항기
4. 일제강점기 시대
5. 이후 현재까지
6. 결론
7. 참고문헌
본문내용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집이라고 생각한다. 집은 모두에게 있어 가장 기본적인 우리들의 안식처이며 쉼터이다. 그래서 필자는 서울에서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집들은 어떤 모습들로 변화해왔는지, 그 바탕에는 어떤 시대적 상황이나 주민들의 생각이 담겨져 있었는지를 조사하였다. 또한 저나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조선시대, 개화기, 일제강점기 시대, 그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주거문화의 제 나름대로의 연결고리를 찾고, 각 시대상 주거문화의 이해하며 조사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주거문화가 보여주는 공통적인 코드를 해석하고 텍스트로서의 주거경관을 읽어내려 했다.
고려시대
먼저 고려의 주거문화이다. 현재 고려시대의 주거문화에 대한 자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태이다. 일부의 문헌자료 또는 집터 등의 흔적을 통해 추측해보는 수밖에 없다. 고려의 주거 형편을 기록한 선화봉사 고려도경에 보면 고려 때 이미 풍수지리설과 음양, 도참사상의 영향을 받은 주거 건축이 유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고려도경 민거조에는“송악의 지세는 평평하지 못하고 자갈과 산두둑이 많기 때문에 일반 백성들의 집은 마치 벌집이나 개미집같이 보였고 지붕은 띠풀로 이었는데 그 띠의 크기는 서까래 양쪽을 간신히 잇대어 놓은 정도였다. 다만 열 집에 한두 집 정도는 기와를 덮은 집도 있다.”라고 적혀 있어 일반 백성들의 집은 대다수가 보잘 것 없는 움집의 형태이고, 귀족계급정도만 기와집을 짓고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선화봉사 고려도경 권28 와탑조에 있는 주거 내부 생활에 관한 기록을 보면“침상 앞에는 낮은 평상이 세 틀 놓여 있고 난간이 둘러 있으며 각각 무늬가 그려진 비단 보료가 깔려 있고 바닥에는 큰 자리가 놓여 있다.”라고 적혀 있어 귀족계급이나 왕궁에는 여전히 온돌이 없었던 것으로 생각되며 “일반 백성들은 대부분 흙침상을 만들고 땅을 파서 아궁이를 만들어 그 위에 눕는다.”라고 적힌 것으로 보아 역시 고구려 사람들의 장갱과 비슷한 채난방식을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참고 자료
홍성태, 2004, ‘서울에서 서울을 찾는다’, 궁리
http://www.yongupjob.co.kr/bbs/board.php?bo_table=freeboard&wr_id=153083
blog.naver.com/hwanggunpr/90111575198
blog.daum.net/schong63/17204486
blog.daum.net/neorich/16155961
http://www.cyworld.com/01020654132_/10221192
http://blog.naver.com/y626?Redirect=Log&logNo=40031957449
http://blog.naver.com/ttirosa?Redirect=Log&logNo=70086619010
http://sanzinibook.tistory.com/334
http://100.naver.com/100.nhn?docid=147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