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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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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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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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저자에 대하여
Ⅱ.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Ⅲ. 내가 저자라면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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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저자에 대하여
성웅 이순신, 그는 1545년 4월 28일, 서울 중구 건천동에서 4남 1녀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집터는 현재의 충무로역과 을지로 3가를 잇는 전철역 근처라고 한다. 그의 고택이 남아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이순신은 아산에서 더욱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말이다. 그의 할아버지 이백록은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고충을 겪는다. 이같이 아버지가 벼슬길에 나서 고생하는 모습을 본 이순신의 아버지 이정은 벼슬을 외면하고 살기로 결심한다. 이에 아내 변씨의 친정이 있는 아산 백암리, 현재 현충사가 있는 방화산 기슭으로 이사하여 거주하였다. 두 형과 함께 유학을 공부하던 이순신은 22세 겨울부터 무술을 익히기 시작했다. 아마 무술이 그의 적성에 더욱 맞았던 것인지, 사화에 연루되었던 가문의 배경의 영향이 컸던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많은 비중을 무예 연마에 두게 되었다.
그는 21세에 군수 방산의 딸과 혼인하게 되고, 방씨 부인과의 사이에 3남1녀를 두었다. 그리고 해주 오씨와도 혼인을 하게 되는데, 그녀와의 사이에서는 2남2녀를 두었다.
28세에 첫 번째로 무과에 응시한 이순신은, 달리던 말에서 떨어져 낙방하고 말았다. 우리가 많이 아는 매우 유명한 일화이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4년 후에 다시 도전하여 병과 4등으로 결국 급제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12월, 한남 삼수 동구비보의 권관에 임명되었다. 사실 그 당시로 보면 매우 늦은 나이에 사회로 나왔던 것인데, 늦은 시작에도, 한 번의 실패에도, 모두 굴하지 않고 무과의 길로 묵묵히 나아갔던 이순신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는 나에게도, 요즘의 청춘들에게도 끝까지 도전하는 힘을 주는 듯 하다.
3년의 임기를 마친 그는 35세에 서울로 돌아와 훈련원의 봉사로 재직한다. 이때 그에게는 한 가지 사건이 발생하는데, 다름 아닌 자신의 상관인 병조정랑 서익이 제의한 부당한 인사청탁을 거절한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