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일전쟁 3대 전투
- 최초 등록일
- 2016.05.27
- 최종 저작일
- 20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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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3대 전투를 중심으로 러일전쟁을 개관합니다
목차
1. 개전
2. 3대 전투
3. 종전
4. 연표
본문내용
이론적으로 영하 2도에서 바다물이 얼지만 실제로는 20도가 되어야 한다. 러일전쟁 개전은 블라디보스톡에 있던 러시아의 태평양 함대가 여순함대에 정박하고 있던 겨울에 시작되었다. 러시아 해군은 2함대주의가 전략이었다. 발트함대와 태평함함대의 결합으로 양적우위를 확보한 후 일본과 결전하려 했다. 도고는 그 점을 꺼려해서 발트함대가 도착하기 전에 여순함대를 제거하려 했다. 하지만 여순함대는 여순항 뒤에 숨어버렸다. 도고는 여순함대 후방에 있는 여순요새에서의 포격 때문에 근접할 수가 없었다. 이런 이유로 여순요새 공격이 시작되었다. 애초에 도고의 해군은 203고지에 관측탑을 세우고 숨어있는 러시아 전함에 대포를 쏘아달라고 했다. 하지만 노기군은 육군은 육군의 일을 한다고 했다. 여순 요새 점령이 육군의 일이라는 주장이다. 러시아가 대량의 콘크리트를 사용해 근대 요새로 보수한 여순 요새는 기관총, 철조망, 참호로 무장되어 있었다. ‘돌격 앞으로’가 가능한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노기의 광기와 무지가 일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일본은 세 차례 감행된 총공격에서 모조리 실패했다. 1차 공격에서 16,00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2차 공격에서 5,000명, 3차 공격에서 4천명이 사상자가 발생했다. 당시 육군 총참모장이던 고다마 겐타로(1852~1906)의 말이다. <노기군은 전술전환도 하지 않은 채 신선한 피만을 요구하고 있었다> 어떤 형태가 생기면 그 형태를 단순 반복하는 것이 일본군의 특징이다. 2차 대전 때 한 영국장교는 일본군의 최대 실수는 멍청한 참모진에 있다, 했다. 당시 노기의 참모였던 ‘이지치 고스케’의 말이다. 보병이 기관총을 휴대하는 것은 용감하지 못한 꼴이다. 물건은 아끼고, 사람의 생명은 그 다음이다. 나중에 러일전쟁의 상징이 된 '280 밀리미터 유탄포'를 보내겠다고 하자, '보낼 필요 없음'이라는 답변을 보냈다. 이지치는 포병출신이었다. 전문가는 일이 안 되는 이유 다섯가지를 즉시로 댈 수 있는 사람이라 했다. 그 점에서 이지치 참모는 최고의 포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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