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동래 역사 답사보고서
- 최초 등록일
- 2016.06.06
- 최종 저작일
- 20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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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임진왜란 역사관
2. 동래부 동헌
3. 복천고분군 야외전시장
4. 복천 박물관
5. 동래읍성 북문
6. 동래향교
본문내용
1. 임진왜란역사관
동래읍성 임진왜란 역사관은 현재까지 확인된 임진왜란 전쟁터 중에서 여러 종류의 가장 많은 유물들이 출토된 역사의 현장에 세워진 역사관이다. 동래읍성 임진왜란 역사관은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임진왜란 당시 동래읍성 전투의 생생한 모습은 물론, 목숨을 걸고 적에 맞선 선조들의 불굴의 항쟁 정신과 모습을 잘 보여주는 교육장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 발굴 역사상 최초로 철도 역사 안에 만들어진 역사 전시관이다.
임진왜란은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왜가 우리나라를 침입한 전쟁이다. 음력 4월 14일에 부산진성이 궤멸당하고 이튿날 동래읍성이 함락된 지 한 달이 안 되어 서울이 적의 수중에 떨어졌으며 달포 안에 평안도와 함경도가 유린당하였다. 일본이 전국시대를 통일하고 오랜 싸움에서 얻은 강력한 무력을 국외로 방출하고자 일으킨 전쟁으로 우리 국토가 초토화되었다. 그러나 의병, 의승군의 분기 및 조선 수군의 활약과 더불어 조/명 연합국의 반격으로 전세가 역전되면서 왜군을 물리치고 전쟁을 끝내었다. 임진왜란은 동북아시아 3국의 국력을 총동원하여 벌였던 국제전이자 조선 왕조 최대의 국란으로 중국은 명/청 교체의 계기가 되었으며 일본은 봉건제후의 세력이 몰락하고 도쿠가와막부가 성립되었다. 임진왜란이 끝난 지 30년이 지난 1626년의 경연에서 영의정 이원익은 “난 후의 인구가 평상시의 6분의 1이 못 된다.” 고 할 정도로 극심한 인명의 희생이 있었다. 또 왕의 피난으로 노비들이 그들이 문서를 보관한 형조와 장예원을 불질러 경복/창덕/창경의 세 궁궐을 모두 불타 없어지기도 하였다.
1-1 내가 할말 & 자신의 느낌
아침 10시 수안역에 위치한 동래읍성 임진왜란 역사관에 도착하게 되었다. 임진왜란 역사관엔 도시지하철에 위치한 역사관인데도 불구하고 매우 잘 조성되어있었다. 당시 사용되었던 무기와 무구, 활과 화살, 갑옷과 투구, 동래읍성의 해자도 있었다. 해자에는 많은 무기들도 많았지만 사람의 뼈도 많이 보였다. 당시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 외에 조선시대의 무기인 화차와 대장군전/장군전을 체험할 수 있는 곳도 있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