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한문학의 이해 레포트 - 조선시대 송덕봉의 한시 감상
- 최초 등록일
- 2016.06.21
- 최종 저작일
- 20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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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 송덕봉(宋德峰)의 생애
2. 일상생활을 담은 송덕봉(宋德峰)의 한시
2-1. 화답시(和答詩)
2-2. 생활시(生活詩)
2-3. 자연시(自然詩)
3. 결론
본문내용
1. 서론 – 송덕봉의 생애 정창권, 『16세기 여성시인 송덕봉 작품집』, 한국여성문학학회, <여성문학연구> 9권 0호. 2003, 277-279쪽.
송덕봉(宋德峰, 1521~1578)은 중종 16년 12월 20일 전라남도 담양에서 태어났다. 흥주 송씨로 본이름은 알 수 없고, 자가 성중(成仲), 호가 덕봉(德峯)이었다. 그녀의 아버지 송준은 사헌부 감찰 · 단성 · 현감 등을 지냈고, 어머니 함안 이씨는 사헌부 대사헌 · 전라 감사 · 예조 판서 등을 역임한 이인형의 따님이었다. 덕봉은 그들 사이의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녀는 16살에 24살의 미암(眉巖)과 혼인하여 유경림과 일명 ‘은우어미’라는 1남 1녀를 두었다. 덕봉이 살았던 조선 중기만 해도 남자가 여자 집으로 가서 혼례를 올리고 그대로 눌러 사는 장가와 처가살이 혹은 친정생활이 보편적인 혼인 풍속이었다. 한마디로 딸이 부모를 모시고 사는 시대였던 것이다. 덕봉도 역시 결혼 후 계속 담양에서 부모를 모시고 살았고, 부모가 돌아가신 뒤에는 그 집과 전답을 물려받아 조상의 제사를 모시며 살았다. 그렇다고 덕봉이 시부모를 전혀 모시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미암(眉巖)이 귀향을 떠나자 그녀는 시어머니 최씨를 모셔다가 지성으로 봉양했는데, 이에 최씨가 그녀의 효성에 감동하여 미암(眉巖)의 귀양지인 함경도 종성까지 편지를 보내기도 하였다. 또 시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에는 혼자서 예(禮)에 따라 장례를 치르기도 하였다. 16세기는 인간 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들이 가족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자급자족적 가족사회였다. 그래서 의식주를 비롯한 가족의 경제적 측면을 담당한 안주인의 역할이 크고 중요했는데, 덕봉도 역시 가족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일에서부터 제사를 지내고 손님을 접대하는 일, 집안에 필요한 살림을 장만하는 일, 가족의 정신적 지주 역할 뿐만 아니라 수입 · 지출과 같은 경제적 책임을 떠맡는 일, 나아가 곤궁에 처한 이웃을 도와주는 구휼(救恤) 등에 이르기 까지 실로 방대한 역할을 하였다.
참고 자료
宋德峯, 『德峰集』, 1571.
柳希春, 『眉巖日記』, 1567-1577.
송재용, 『女流文人 宋德峯의 生涯와 文學』, <국문학논집> 15권, 1997
정창권, 『16세기 여성시인 송덕봉 작품집』, 한국여성문학학회, <여성문학연구> 9권 0호.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