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분청사기
- 최초 등록일
- 2016.07.06
- 최종 저작일
- 20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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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리말
2. 분청사기의 발생배경
3. 분청사기의 발생기, 발전기, 쇠퇴기, 소멸기
4. 분청사기의 종류
5. 분청사기 지역별 가마터
6. 참고문헌
7. 결론
본문내용
1. 머리말
분청사기란 회흑색 태토 또는 회색 위에 백토니(白土尼)를 분장한 다음 유약을 입혀서 구워낸 자기를 말하는 데, 도자기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그런 자기입니다. 분청사기라고 하는 말의 유래는 1930년 고유섭이 일본인들이 사용하고 있던 미시마란 용어를 반대하여 새롭게 지어낸 분장회청사기라는 말의 약칭입니다. 고려 말에 쇠퇴해져가는 상감청자를 출발해서 조선전기 도자의 한맥을 이루게 되었고, 전성기는 15세기 전반, 그리고 중반, 15세기 후반에는 관요가 설치되면서 서서히 쇠퇴해져 가면서 16세기에는 백자에 흡수되면서 소멸된 분청사기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2. 분청사기의 발생배경
고려 말, 혼란한 정치와 금속기 사용금지 정책에 따라 자기와 목기사용 증가, 강진과 부안을 중심으로 한 도자공예가 정형을 잃어갔으며, 수요의 확산에 따라 도공들도 점차 전국으로 흩어진다. 여러 지방으로 흩어진 도공들의 소규모의 가마로 도기 제조, 상감청자가 서서히 탈바꿈하여 어떤 조건에 구애됨이 없이 자유롭게 제작을 하여 민족자기의 성격을 띤 분청사기의 태동시기를 알리게 된다. 달라진 환경, 변화한 도공들의 의식구조, 수요층의 변화가 요인이 되어 민족자기라 할 수 있는 것은 국가운영 체제의 관요로 운영되지 않고 도공의 자발적인 소규모 가마에 의해 제작이 이루어진 점을 들 수 있다. 또한 서민의 수요에 부응하여 분청사기의 절정기가 민족문화를 꽃피운 세종치세의 연간이다.
3. 분청사기의 발생기-발전기-쇠퇴기-소멸기
① 발생기 [ 약 1360년경 ~ 약 1420년경]
고려와 조선왕조의 교체시기와 겹치는 시기로, 상감청자는 무늬, 형태 등이 흐트 러지고 청자의 색도 압록색을 띄면서 쇠퇴해간다. 조선왕조의 성립을 배경으로 퇴화해 간 고려상감무늬청자가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하여 인화기법이 새로 정착되어 가는 시기 이다. 특징은 공안부, 경승부, 인녕부의 관사명이 새겨 있다.
참고 자료
네이버, http://blog.naver.com/vlgkdlsem/220348551839
다음, http://blog.daum.net/gijuzzang/5135470
다음, http://tip.daum.net/openknow/39335566
宋左璇 著, 우리나라 도자기와 가마터, (128p~131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