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 아비뇽 교황청의 비판과 분열
- 최초 등록일
- 2003.07.08
- 최종 저작일
- 20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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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아비뇽 교황청, 비판, 분열
▶ 교황청의 비판
▶ 교황청의 분열
■ 존 위클리프트, 존 후스
▶ 존 위클리프 (John Wyclif:1328?-1384)
▶존 후스 (John Hus:1373-1415)
본문내용
▶ 교황청의 비판
아비뇽 교황청 시절의 교황은 다 프랑스인이었다. 교황청은 마치 한 프랑스의 기구처럼 보여 졌고, 또 이 기간 중 대부분 프랑스와 전쟁 중에 있던 영국 또는 교황청의 계속적인 간섭에 시달리던 독일 같은 나라에서의 교황의 요구는 무척 흔들렸다. 프랑스 왕 필립5세의 지지를 받은 존22세는 교황 국가의 이익을 위하여 이탈리아에 대한 독일의 영향력을 감소시킬 시기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교황청과의 싸움은 계속되었고 이러는 동안 독일의 선제후들은 1338년 렌스에서 유명한 선언“선출된 황제는 그 임무에 취임수행하기 위하여 교황의 승인을 얻을 아무런 필요가 없다.”고 선포했다. 이 선포는 프라크 푸르트 국회에 의하여 확인되었다.
국가를 변호하는 인물 중에 대표할 만한 자의 하나가 위대한 이탈리아 시인 단테이다. 그는 그의 논문에서 교황정치가 사람을 영원한 축복으로 이끌어 주는 것처럼, 황제는 현세적 행복을 위하여 필요하며 각기 모두 직접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며 타인의 영역을 침범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단테는 주의 깊게 교황의 국가 지배의 주창을 증명하는 성서 텍스트 해석과 이를 뒷받침하는 역사적 사건들을 논박하였다.
참고 자료
․ 세계 기독교 교회사(윌리스턴 워커)
․ 중세 교회사(윌리암 R. 캐논)
․ 중세 교회사(유스코 L.곤잘레스)
․ 현대인을 위한 교회사(브루스 셸리)
․ 세계 교회사(롤란드 베이컨)